[인문사회]'아동의 탄생'…아동이 인격체 되기까지

  • 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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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창가에 기댄 농가의 소년’.

17세기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창가에 기댄 농가의 소년’.

◇아동의 탄생/필립 아리에스 지음 문지영 옮김/703쪽 2만5000원 새물결

필립 아리에스는 사회사 및 가족사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명품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힌 프랑스 블루아 출생 사학자이다. 아카데미즘 밖에서 활동한 자칭 ‘일요일의 역사가’인 그를 명예의 전당에 오르도록 한 폭탄 같은 책이 바로 ‘아동의 탄생’이다.

10년 노작의 결실인 ‘아동의 탄생’은 무엇보다 아웃사이더로서의 낙인을 감수하면서 선택한 주제의 혁신성이 돋보인다. 저자가 ‘아동의 탄생’에서 펼쳐 보이는 사회사의 불연속적 여정은 경탄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동은 없다’. 오늘의 아동은 역사적 발명품이다. 아동이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요, 독자적 발달 시기를 거치는 인격체라는 근대적 자각은 근대교육의 진화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10세기경 화가들은 어린이를 덩치가 작은 성인으로 묘사했고, 중세 시기 어린이는 작은 악마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동의 발명 뒤에 모성애에 대한 자각 및 ‘가족 중심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간파함에서도 아리에스의 혜안이 빛난다. 중세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죽음으로 가는 길의 하나였음을 상기할 일이다.

아리에스의 결론에는 예기치 못했던 반전이 숨어 있다. 아동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학교제도 속에 오래도록 ‘감금’한 결과는 개인주의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라 가족생활의 통제 강화로 귀결됨으로써, 결국 프랑스의 근대는 공동체 사회의 풍요로운 자산을 잃어버린 채 ‘전통적 사회성의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아리에스가 동원한 방법론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간 역사학계로부터 정당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편지, 개인의 일기, 인구학적 통계 수치는 물론 묘비, 조각, 판화, 초상화, 회화 등의 도상자료를 치밀하게 동원함으로써 방법론상 획기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아동의 탄생’에도 한계는 있다. 자신의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일부 자료를 왜곡 혹은 배제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과 유보가 이어졌다.

‘아동의 탄생’류의 연구는 인간 인식에 내재된 ‘현재 중심성(present-centered)’의 한계를 정면으로 전복시킨다. 현재의 삶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상태요, 영원불변하리라는 믿음은 사회사의 여정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동시에 앞으로의 역사 또한 가변적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회 아동의 탄생 과정이 궁금해진다. 우리만큼 아동 연구에 풍요로운 토양도 없을 듯한데, 현재는 일제강점기 아동기 연구를 필두로 관련 연구가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하다. 앞으로 연구가 축적된다면, 오늘날 외기러기 부모 및 원정출산을 낳기까지 어린이의 위상 변화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려나 희망을 품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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