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오빠∼” 유흥업소 문자, 내 번호 어찌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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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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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소 종사자들이 밝히는 스팸문자 발송의 비밀

‘오빠, 저 OO인데요. 제가 이번에 역삼동 ××의 실장이 됐어요. 꼭 한번 찾아주세요.’

지난해 결혼한 ‘새댁’ 윤모 씨(29)는 얼마 전 우연히 남편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윤 씨의 남편은 1주일에 한 번가량 회식을 핑계로 밤 12시가 넘어 들어온다. 그동안 ‘건설업체 업무상 어쩔 수 없으려니’ 하며 애써 넘어간 윤 씨는 문자를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윤 씨는 남편의 휴대전화 문자 기록을 쭉 확인했다. 이런 문자메시지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은 번호로만 대여섯 차례 비슷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단골 고객 대하듯 친근한 말투, 누가 봐도 유흥업소인 줄 짐작하게 하는 낯 뜨거운 문구가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이날 퇴근한 남편 얼굴을 본 윤 씨는 결국 화가 폭발했다. “술집에서 어떻게 놀고 다니기에 이런 문자가 오냐”고 추궁했다. 무릎을 꿇고 손발이 닳도록 빌 것으로 예상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거기가 어딘지도 몰라. 그냥 스팸문자야.”

○ MMS에 카카오톡까지…스팸문자의 진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몇 번씩 받아봤을 법한 휴대전화 스팸문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명이 받은 스팸문자는 하루 평균 0.45건에 이른다. 이틀에 한 번꼴로 스팸문자를 받았다는 얘기다.

그 내용은 도박사이트 홍보에서부터 대출 상담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특히 최근 문제가 되는 게 유흥업소 스팸문자다. 나이트클럽, 룸살롱 등을 홍보하는 무차별적인 스팸 세례는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수준을 넘어 부부싸움을 부르는 등 ‘대형 사고’의 원흉이 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유흥업소 스팸문자는 최근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과거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대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로 스팸문자를 전송했다. 하지만 이젠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대 손홍선 순경은 “외국인이나 신용불량자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 발신자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최근에는 단문문자메시지(SMS)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멀티미디어문자메시지(MMS)를 스팸문자 도구로 활용하는 유흥업소들도 늘어났다. 스마트폰 사용자를 겨냥한 유흥업소의 신규 홍보 전략도 이미 등장했다. 직장인 배모 씨(34)는 최근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서 대기 중인 친구를 발견했다. 카카오톡의 경우 내 전화에 상대방 번호가 없어도 상대방이 내 번호를 등록했을 경우 ‘친구 추천’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 추가’ 버튼을 누른 배 씨는 이후 한동안 유흥업소 여종업원의 스팸 메시지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 해킹된 개인정보가 유흥업소로

대체 그들은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스팸문자를 보내는 걸까.

나이트클럽 웨이터부터 시작해 서울 강남 유명 룸살롱의 부장이 된 조모 씨(유흥업소 경력 12년차). 그는 “정보 수집의 기본은 역시 자기 고객 관리”라고 말한다. 과거 업소 고객들은 물론 눈이라도 한번 마주친 고객의 연락처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리해 둔다는 것이다. 그는 “동종 업계에 있는 종사자끼리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방식으로 모은 연락처만 1000개가 넘는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조 씨의 방법은 지극히 고전적인 방식에 불과하다. 최근 업체 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연락처 수집 방법도 다양해졌다. 강남의 한 풀살롱(일명 ‘풀코스살롱’의 줄인 말. 음주와 성매매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곳) 업주는 단골 고객은 물론 업소 주변 차량에 적힌 연락처, 강남 소재 고등학교 졸업앨범 등까지 뒤져 고객 명단을 작성한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일단 보내고 보는 이른바 ‘묻지 마’ 스팸문자 전략은 고급 업소보단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업소에서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해킹된 개인정보가 유출돼 유흥업소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 해커들로부터 구입한 개인정보를 유흥업소 종사자에게 판매하고 스팸문자까지 대신 보내준 김모 씨(41)를 구속했다.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한 김 씨는 30대 이상 남성들에게 전략적으로 스팸문자를 집중 발송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해킹되거나 유출된 개인정보를 유흥업소에 팔거나 많게는 수만 건의 유흥업소 홍보문자를 대신 보내주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늘어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량으로 문자를 쉽게 보낼 수 있는 웹서비스는 이런 행위에 날개를 달아줬다. KISA가 작성한 ‘유흥업소 관련 스팸의 발신채널 현황’을 보면 지난달 한 달 동안 ‘웹투폰(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여러 대의 휴대전화로 한꺼번에 문자를 보내는 방식)’으로 스팸문자를 보낸 비율이 전체의 87%로 13%인 ‘폰투폰(전화에서 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방식)’을 압도했다.

○ ‘스팸과의 전쟁’ 해결책은?

룸살롱에서만 8년 넘게 일해 상무 직함까지 단 김모 씨는 스팸문자를 보내는 그만의 요령을 귀띔해줬다. 첫 번째는 ‘금요일을 공략하라’다. 회식이 집중되는 금요일, 퇴근을 앞둔 오후 5시쯤 문자를 보내면 고객들을 낚기에 가장 좋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그날’을 기억하라”고 했다. 명절, 국경일 등 ‘그날’은 문자를 보낼 핑계로 더없이 좋은 시점인 데다 휴일 직전 술자리가 잦은 고객들을 공략하기에도 좋다는 게 이유였다.

김 씨는 “이젠 콘텐츠도 중요한 시대”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튀는 문자는 낡은 방식”이라면서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문자로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또 “특히 고객들이 문자를 끝까지 읽도록 하기 위해선 첫 문장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치밀한 계산하에 보내지는 스팸문자, 원치 않는 이 ‘골칫덩어리’를 차단하는 방법은 없을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스팸문자 발신자를 규제하는 조항이 있다. 제50조에 따르면 수신자가 사전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일방적으로 광고를 보내면 발송자에게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실제로 법적인 처벌이 이뤄진 사례가 드물었다. 발송자들이 남의 명의를 도용하는 사례가 많고, 웹투폰의 경우 스팸 원발송자를 가려내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워 사실상 규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권현오 KISA 스팸대응팀장은 “웹투폰을 이용한 스팸에 대한 신고가 급증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따라서 최근 웹아이디를 식별해 스팸의 원발신자를 가려내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KISA가 웹투폰 스팸에 대한 신고(www.spamcop.or.kr)를 받아 서비스 이용 정지 등의 제재를 하고 있다.

한편 개인 차원에서는 어떤 자구책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이동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지능형 스팸 차단 서비스(문자 전송 과정에서 발신, 회신번호, 본문 내용, 발송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스팸문자를 차단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이 서비스는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서 가입할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경우 스팸 차단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된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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