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떠오르는 네트워크 사립초등학교

  • 입력 2005년 1월 27일 15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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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말자, 우리들의 우정을'1976년 졸업, 경기국민학교 6학년 난초반 급우들
'변치말자, 우리들의 우정을'
1976년 졸업, 경기국민학교 6학년 난초반 급우들
《경기, 경복, 리라 등 국내 유명 사립초등학교는 1965년을 전후해 세워졌다.

의무 교육의 확대로 교실난이 극심해지자 정부가 교육 사업을 적극 권장하기 시작했던 것.

덕수, 교동 등 당시 명문 공립학교에서 우수한 교사를 확보한 사립학교들은 일찍이 특별활동 점심급식 등 선진 교육제도를 도입해 학부모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68년 7·15교육개혁 이후 중학교 무시험 배정, 1974년 고등학교 학군 내 추첨입학제 등으로 중·고교 평준화 시대가 시작되자 사립초등학교는 ‘선택된 교육집단’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굳혔다.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내 이마카페에 경기초등학교 11회 동창들이 모여 사회활동과 자녀 교육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기주희 씨,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의사 이찬화 씨, 주부 김진영 씨와 이채영 씨, 치과의사 이효선 씨, 미세스 마이 대표 황정연 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박선주 씨. 강병기 기자

대부분 개교 40주년을 맞는 사립학교의 초창기 졸업생들은 이제 40대 전후의 사회 중추세력이 됐다.

선진 교육의 혜택을 받았던 이들이 각계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서서히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 개교 40주년… 그들이 다시 뭉친다

흔히 학력을 이야기할 때 명문 중·고교 또는 명문대 출신을 내세우지만 사립초등학교 출신들은 출신 초등학교에 대한 긍지가 남다르다.

‘내가 배워야 할 기본을 사립초등학교에서 배웠다’는 생각이 있다. 스쿨버스, 점심 급식, 최신식 학교시설, 특별활동, 예절 교육 등의 이유도 있지만 수준높은 ‘이너 서클’이라는 점도 자부심에 내재해 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개인적 인맥 형성에 머물렀던 이들이 최근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대체로 사회적 기반을 갖췄기 때문이다. 마침 각 학교도 개교 40주년을 즈음해 동창회 주소록을 제작하는 등 네트워크를 재정비하고 있다.


정계

이들 모임은 인터넷을 통해 더욱 활발해졌다. 싸이월드에 졸업앨범 사진을 스캔해 올려놓고 옛날 추억을 공유한다. 남성에 비해 네트워크가 약한 여성들도 사회생활이나 자녀 교육 등에 대한 정보를 활발히 교류한다.

경기초등학교 11회(1976년 졸업)인 치과의사 이효선 씨(42)는 “대학 동창만 해도 이해 관계에 따라 만나게 되는데 초등학교 모임은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기주희 씨,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의사 이찬화 씨, 국립민속박물관 박선주 학예연구사 등 11회 동창 30∼40명과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경복 4회) 등 경복 출신들이 모인 ‘경복회’도 재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와인, 골프 등 취미 생활을 중심으로 자주 모인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경복초등학교 19회(1984년 졸업)가 졸업 후 20여년 만에 처음 연 대규모 동창 모임에는 같은 학년 전체 300명 중 30명이 모였다.

특목고인 대원외고 출신 30대 중반 21명이 결성한 소규모 사교 모임 ‘BJ 21’도 사실상 사립초등학교 동창들이 주축을 이룬다. 변호사, 컨설턴트, 사업가 등이 된 이들은 아내, 동생, 처남, 사촌 등 가족 대부분도 사립학교를 다녔다.

이 모임 멤버인 유트렌드 코리아 이정훈 실장은 “비슷한 환경에서 교육 받고 자란 동질성 때문에 사립학교 출신끼리 더욱 친밀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 각계 파워 엘리트 포진


재계

사립학교 출신들은 결속력이 강하다. 다 커서 만난 수천 명 대학 동창과 코흘리개 시절 함께 뛰어 놀던 수십 명, 수백 명의 초등학교 동창의 친밀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재벌가 자녀들이 다닌 경복초등학교에는 현대, 효성, 대림, LG 등의 자녀들이 같은 학년에서 공부했다. LG벤처투자 구본천 사장, 동아일보 김재호 전무 등과 동기(12회)인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말한다.

“한 학년이 300명밖에 안 되니까 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졸업 후 청운중과 경복고로 학맥이 이어졌죠. 지금 만나도 서로의 직함 대신 이름을 부릅니다.”

경기에는 역대 대통령 자제 10여 명을 비롯해 정계 인사 자녀가 많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자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나비아트센터 노소영 관장(9회)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KBS 아나운서인 윤인구 씨(20회) 등이 있다.

윤 씨는 지난해 초 출신교인 경기초등학교와 경복고 동창 11명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같은 학년이었던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 조선호텔 정유경 상무 등과 20년 이상 막역한 친구다. 경복고 동창인 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과도 가깝다. “좋은 환경에서 받았던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줄 수 있을까”하는 것이 모임의 고민이라고 윤 씨는 말한다.

경기초등학교 19회 동창인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전재만 씨(미국 유학 중)와 효성그룹 조현상 상무도 청운중, 경복고, 연세대까지 출신 학교가 모두 같아 친분이 두텁다.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경기 16회)와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사장(경복 18회)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사립학교는 개교 당시부터 특성화 교육을 강조했다. 예체능 특별활동이 활발했던 리라는 프로골퍼 박지은(25회)을, 충암은 바둑기사 이창호(23회)와 배우 차인표(15회) 등을 배출했다. 또 삼육은 음악계, 상명은 법조계 등에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젊은 정치인과 유명 문화예술인 중에도 사립 출신이 많다. 남경필 의원(경복), 박진 의원(은석 6회), 박영선 의원(예일 3회), 나경원 의원(계성 33회), 김민석 전 의원(신광 7회) 등과 피아니스트 서혜경(경복 8회),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씨(경기 18회) 등이 있다. 당시 김지연 씨와 호텔신라 이부진 상무는 같은 학년이었다.

○ ‘서로 신세지지 말자’


문화 체육계

경복 출신의 한 전직 기자는 모 재벌그룹 후계자와의 인터뷰를 단독으로 성사시킨 적이 있다. 수십 명 기자들의 요청에도 꿈쩍 않던 그 후계자는 초등학교 때 절친했던 한 학년 후배 기자만은 따로 만나 속내를 토로했다.

그러나 사립 출신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절대로 ‘부담 주지 말자’ ‘신세지지 말자’는 의식이 불문율처럼 돼있다. 구차하게 초등학교 인맥을 업무에 이용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레이커스 커뮤니케이션즈 이지호 대표이사(경복 15회)는 말한다.

“주위에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업상 아쉬운 소리를 하는 친구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 추억을 나눌 때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친구 덕분에 기회가 많아지긴 하지만요.”

현재 각 사립초등학교 재학생 중 5∼10%는 학부모 역시 사립 출신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강남권에 살면서 굳이 강북에 있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강남권에도 좋은 공립학교가 많지만 사립학교에 대한 향수와 ‘선택된 네트워크’에 대한 믿음이 있다.

사립학교 출신들은 좋은 환경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 그러기에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예의바르고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가졌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말이다.

그레이프 커뮤니케이션즈 이상훈 부국장(경기 11회)은 “초등학교 때 스쿨버스 대신 자가용을 타고 통학하는 친구들은 일부러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왔다”고 회상한다. 교사들도 미술 시간에 거의 다 만들어진 비싼 공작 재료를 사 온 학생은 나무랐다. ‘잘난 척 하지 말라’, ‘튀지 말라’는 의식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공유됐다.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이찬화 씨(경기 11회)는 과거 사립학교의 인성 교육과 교사들의 열의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방학 때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면 정성스럽게 답장을 보내 주셨죠. 무조건 윗사람 말에 순종하고 얌전할 것을 요구하던 시대였지만 선생님들은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도록 가르쳤어요.”

요즘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에 비해 크게 우위를 갖지 못하면서 많은 학부모는 자녀를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로 유학 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 사립학교의 교육은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립초등 전국 76곳… 예체능 외국어 교육 강조▼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5541곳 중 사립학교는 76개교로 1.4%를 차지한다. 서울에는 그 절반이 넘는 40개의 사립학교가 있지만 금천구에 있는 동광초등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강북에 있다. 1980년대 이후 강남이 급속히 개발되면서 사학들이 수천 평의 학교 부지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가톨릭 계열인 계성초등학교가 내년도 1학기부터 서초구 반포4동으로 이전할 예정이어서 강남권 학부모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에 비하면 사립학교의 위상은 다소 떨어진 감도 있다. 매년 12월 학군에 관계없이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사립초등학교의 2005학년도 평균 입학 경쟁률은 1.9 대 1이었다. 1970, 80년대에는 3 대 1 이상이었다.

요즘 새로 짓는 공립의 좋은 시설에 비해 사립학교 시설이 우위를 갖지 못하는 데다 예전 사립만이 실시했던 특기 적성 활동과 학교 급식 등이 공립학교에서도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강남권 학부모들은 강북에 있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사립학교의 퇴조기라는 위기 속에 각 학교는 큰 입학 경쟁률 차이도 나타낸다. 2005학년도의 경우 이대부속초등학교가 5.5 대 1로 가장 높았으며 계성초등학교와 화랑초등학교가 각각 4.6 대 1로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경쟁률 1.0 대1 이하인 곳도 9곳이나 됐다.

차별화된 교육에 사립초등학교의 생존 여부가 달린 것이다. 사립은 기본 교과과정은 공립과 같지만 예체능과 외국어를 특히 강조한다.

영훈초등학교는 영어권 국가의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는 효과를 얻도록 원어민 강사 30명이 수업의 50%를 영어로 진행한다. 은석초등학교와 경기초등학교는 중국어를 가르친다. 리라초등학교는 골프와 수영 등 스포츠를, 추계는 국악을 특히 강조한다. 화랑초등학교와 경희초등학교는 숲 속에 위치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인성교육도 강조해 동산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생일 축하 받는 학교’, 중앙대 사범대 부속 초등학교는 ‘전교생 형제 자매 만드는 학교’ 등을 표방한다.

서울의 사립초등학교 현황
학교주소학생수경쟁률
경희동대문구 회기동8331.7
삼육동대문구 회기동6751.0
은석동대문구 장안2동6791.3
금성중랑구 신내동7321.2
선일은평구 갈현동6031.4
예일은평구 구산동9881.7
은혜은평구 불광2동4380.8
충암은평구 응암4동9251.3
경기서대문구 충정로2가8852.7
명지서대문구 홍은3동8172.4
이화여대사대부속서대문구 대신동7215.5
추계서대문구 북아현동3960.9
홍익대사대부속마포구 상수동6142.0
동광금천구 시흥동4151.2
동북도봉구 쌍문동7481.1
한신도봉구 쌍문4동7401.0
상명노원구 중계3동7941.1
청원노원구 상계동6641.0
태강삼육노원구 공릉2동8641.2
화랑노원구 공릉동8504.6
상명대사대부속종로구 홍지동4251.3
운현종로구 운니동1791.8
계성중구 명동2가6364.6
동산중구 신당4동5992.5
리라중구 예장동9311.2
숭의중구 예장동6702.7
신광용산구 청파동3가4031.8
유석강서구 등촌동3541.6
중앙대사대부속동작구 흑석동11793.6
한양성동구 행당동8232.7
경복광진구 능동9572.1
성동광진구 자양2동7951.1
세종광진구 군자동3861.3
광운성북구 장위3동7021.0
대광성북구 보문동7가6121.0
매원성북구 돈암동4431.0
성신성북구 돈암동6181.4
우촌성북구 돈암2동4550.8
영훈강북구 미아5동8644.4
2005학년도 기준. 자료제공:서울시 교육청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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