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방 논증' 존 설 교수 "철학논쟁서 정신-물질 구분 폐기"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9시 02분


컴퓨터가 발달하면 인간의 두뇌를 대신할 수 있을까?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을 통해 이에 대한 비판적 반론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미국 버클리대 존 설 교수(68)가 ‘다산기념 철학강좌’(운영위원장 길희성 서강대교수)의 초청으로 내한해 2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의 이번 방한은 두 번째.

“1987년 주한미군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아들을 만나러 왔었습니다. 그때는 괜히 한 철학교수에게 연락을 했다가 여기저기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 다녔지요.”

30대에 쓴 저서 ‘언어행위’(1969)로 일약 언어철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부상한 그는 언어사용 문제를 인간의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시키며 심리철학과 인지과학분야의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 그의 철학을 주제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독일 등에서 대규모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그에 관한 책들이 출간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철학의 특징은 현대과학의 유물론적 사고와 합리성의 이름 아래 철학계에서 폄훼해 온 ‘상식’을 복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삶은 언제나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수는 물질과 정신을 독립된 실체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을 비판했다. 서양철학사에서 또 하나의 주류를 형성해 온 유물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의 정신은 뇌라는 물질의 특성이라고만 보기에는 물질의 일반적 특성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뇌의 작용인 ‘의식’과 그 ‘주관성’은 내장의 특성인 ‘소화’나 피의 특성인 ‘액체성’ 등과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현 철학계의 풍토에서 ‘상식’을 복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에 속한다. 그는 “‘정신’ ‘의식’ ‘물질’ 등의 전통적 범주 및 그밖에 전통적 방식으로 이해돼 온 것들 일체를 철학 논쟁에서 폐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주고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서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의 학설은 정신 현상의 원인이 기본적으로는 두뇌의 작용에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을 인정하지만 또 한편 물질로 환원불가능한 정신의 주관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자연주의(Biological Naturalism)’로 이해된다.

설교수의 강연은 20일에 이어 21일 오후 3시반 고려대 국제관, 23일 오후 3시반 서강대 다산관, 24일 오후 1시 서울대 음악대학 예술관에서 열리며 주제는 다음 저서로 준비중인 ‘행위의 합리성(Rationality in Action)’. 02―450―3389

<김형찬기자>khc@donga.com

▼'중국어 방 논증' 이란? ▼

상당수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달하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존 설교수는 ‘중국어 방’이라는 가상의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가진 ‘중국어 방’을 만들고 밖에서 입력되는 중국어에 대해 대화하듯 반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방은 중국어를 하는 사람과 그럴 듯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통사적 규칙에 따라 프로그램을 수행한다고 해서 일종의 컴퓨터인 이 ‘중국어 방’이 중국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를 못 한다면 ‘중국어 방’에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설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이 가상실험을 통해 “기호를 아무리 잘 조작하는 시스템이라도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고, 이것은 현재 인공지능의 한계를 지적해 낸 탁월한 학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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