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 잡아라” 화장품 대리점 등 40년전 억대 몸값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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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스타들 스카우트 비용

1960년대 아시아의 거포로 이름을 날린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요즘 선수 생활 했으면 재벌 됐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프로야구 선수 몸값을 빗댄 것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새로운 기대주 박지현(18·숭의여고3)은 거꾸로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과거 여자 농구는 화려한 국제대회 성적을 기반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국내 스포츠에서 처음으로 ‘스카우트 전쟁’이란 단어까지 탄생시켰다.

1967년 체코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주역으로 국민적 인기를 모았던 박신자는 1959년 숙명여고 졸업 당시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상업은행은 박신자 측에 저리 대출 제안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농구 원로는 “예금 금리가 20∼30% 하던 시절이었다. 싸게 돈을 빌려 다른 식으로 융통하면 재테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농업은행(현 NH농협은행)은 박신자를 놓치면서 팀 창단을 포기하기도 했다.

1970년대는 박찬숙의 시대였다. 장신(190cm) 센터 박찬숙을 지명하기 위해 실업, 금융 13개 팀이 경쟁했다. 팀들끼리의 담합 논란과 보이콧 사태까지 일으켰다. 박찬숙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서 백지수표를 제시하기도 했으나 ‘부모님이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결국 태평양화학이 코오롱을 제치고 지명권을 행사하게 돼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화장품 대리점과 현금 등 억대 조건으로 입단했다”고 회고했다. 1978년 박찬숙이 합류한 태평양은 무적함대로 이름을 날렸다.

1980년대 성정아는 동방생명, 태평양화학, 신생 현대의 스카우트 3파전에 휩싸였다. 팀마다 현금, 부동산, 체육관 건립(현대) 등 억대가 넘는 조건을 내걸며 과열 양상을 보이자 체육부가 진상조사까지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성정아가 중학생일 때부터 관심을 보인 태평양은 강남 아파트와 화장품 대리점을 지원하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선수 본인이 원했던 동방생명이었다. 동방생명은 태평양에서 지급한 스카우트 비용을 모두 물어주는 등 현금 2억 원 내외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를 지배한 정은순은 중학교 시절부터 자신에게 월 10만 원의 급식비를 지원하며 인연을 맺은 삼성생명에 1억5000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유영주는 한국화장품에서 받은 1억 원을 되돌려준 뒤 SKC와 2억 원에 계약했다.

컴퓨터 가드 전주원은 1991년 현대로 진로를 결정한 후 계약금 2억 원, 학교(선일여고) 지원금 2000만 원에 사인했다.

1998년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출범 후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 등에 묶여 ‘부르는 게 값’이 되던 시절은 옛일이 됐다. 지난 시즌 WKBL에 데뷔한 특급 센터 박지수(KB스타즈)의 연봉은 역대 신인 최고인 6000만 원(인센티브 별도)이다.
 
한국 여자농구 영광의 순간과 그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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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한국 여자농구#스카우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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