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30>‘고현학’으로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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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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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교수 제공
김병희 교수 제공
누군가 100년쯤 후에 요즘 광고를 100년 전 광고라고 하면서 ‘○○○의 광고토크’를 연재한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까? 그에게 미리 귀띔해야겠다. 고현학적 방법을 써보라고. 고고학(考古學·archeology)이 고대 인류의 생활문화를 연구한다면, 고현학(考現學·modernology)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고찰함으로써 현대의 진상을 밝히려 한다. 1924년 곤 와지로(今和次郞) 박사는 간토 대지진 후 폐허로 남은 도쿄의 잔해를 스케치하며 고현학을 창안했다. 광고 역시 고현학 텍스트의 하나다.

현대 신사의 일일 합동광고(매일신보 1922년 5월 25일)는 하루 동안 신사에게 필요한 상품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모름지기 신사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보다 먼저 양치질을 해야 하는데, 일본산 라이온 치마분(치약)으로 닦아야 한다. 면도 후에는 레토 후드에서 만든 크림을 바르고 오리지나루(Original) 향수를 몇 방울 뿌리고 집을 나서야 하며, 약속 장소에 갈 때는 꼭 동경가스전기의 자동차를 타야 한다는 것.

사무실에서 사업 파트너를 만날 때는 피로 해소에 좋은 헬프 약을 먹고, 구강 위생에는 가오루를 써야 하며, 사무실에는 능률을 높여주는 스완 만년필이 있어야 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가스케도 맥주를 마시고, 아내는 아지노모도 조미료를 뿌려 음식 맛을 내야 한다. 식사 후 아내는 남편에게 여자를 이해하는 신사가 되라며 ‘부인구락부’라는 여성지를 권하고, 아이에게는 모리나가 밀크캐러멜을 주며, 자신은 중장탕을 마시면서 가족과 담소를 나눠야 한다.

2003년 ‘이영애의 하루’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광고가 그 원조 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920년대에 근대적 시간성과 일상성이 자리 잡는 정경을 엿볼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근대적 시간은 물론이고 가부장제와 현대적 생활까지 고현학적 증거가 넘쳐난다. 소설가 박태원이 고현학적 방법으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썼듯이, 100년 후에도 이 방법은 광고에 나타난 2010년대의 소비문화와 일상의 정경을 촘촘히 밝혀 주리라. 그렇기에, 요즘 광고에 제품 자랑만 하지 말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현대 신사#고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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