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31>수영복 차림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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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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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교수 제공
김병희 교수 제공
피서지가 우리를 기다리신다. 벌써부터 휴가철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저 암울하던 일제강점기에도 여름휴가를 갔을까? 놀라지 마시라, 물론이다. 철도가 발달할수록 피서지도 늘었다. 1905년 무렵 기차가 폭발적으로 늘자 기차 타고 놀러가기가 유행했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원산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나 부산의 해운대로 피서를 떠났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도 ‘열심히 일한 당신’처럼.

일본 제약회사인 쓰무라준텐도(津村順天堂)의 중장탕 광고(매일신보 1921년 7월 15일)를 보자. 수영복 차림을 한 늘씬한 미녀가 도도하게 서 있다. “이(罹)하기(걸리기) 이(易)한(쉬운) 하(夏·여름)의 부인병”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이런저런 보디카피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장식적 요소로 쓰였을 뿐. 계절성을 고려한 디자인 감각은 요즘 수준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볼거리가 적었던 그 시절엔 선으로 그려낸 모델의 자태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으리라.

모델이 휘감고 있는 수영 튜브에 중장탕(中將湯)이 아닌 CHUJOTO(추조토)라고 영문으로 쓴 까닭은 브랜드 이름을 이국적으로 알리려는 속셈. 당시에 영어는 언어이기 전에 어떤 신비적 상징이었으니까. 모델의 눈짓도 이국적이다. 정면을 보지 않고 먼 산 보듯 응시하는 모델의 시선은 그저 신비로울 수밖에. 영화 주인공과 관객이 세 가지 시선(자아도취, 관음, 물신숭배)을 교환한다는 그레임 터너의 주장에 기대면, 사람들은 자아도취적 시선을 주고받고 광고 모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피서를 떠났으리라.

시간은 풍경과 기억을 남긴다. 피서지 행렬은 기차가 달리면서부터 생겨난 풍경이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로 부산 송도 해수욕장이 개장한 후 인천의 월미도 해수욕장이나 몽금포 해수욕장이 문을 열었다. 원산의 송도원 해수욕장은 기차역이 가까워 인기 폭발이었다고 한다. 기차도 타보고 해수욕도 즐기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 만문만화(漫文漫(화,획))로 유명한 작가 안석영은 “입으나 마나 한 속속뒤리(속속들이) 다- 비최이는(비치는) 해수욕복(수영복)”을 입고 “구정물 속에서 맨살 부비는 것”이라며 해수욕을 조롱했었다. 구정물이면 어떤가, 떠날 수만 있다면.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떠나라! 열심히 일한 당신”.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쓰무라준텐도#중장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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