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명자]코펜하겐서 미래 위한 출항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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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가 오늘 개막됐다. 회의를 앞두고 4일 에베레스트 산 베이스캠프에서는 네팔 정부가 산소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각료회의를 열었다. 10월에는 수중장비로 무장한 몰디브 정부의 해저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같은 진풍경은 선진국이 내뿜은 온실가스 때문에 개발도 못해 본 국가의 운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억울함에 대한 시위다.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에서는 2001년 수도 수몰 이후 뉴질랜드로의 엑소더스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 책임론, 선진국 vs 신흥국

국내외 언론에는 ‘온난화 음모론’도 재등장했다. 음모론은 국내에도 1992년 영국문화원을 통해 50분짜리 영상물로 소개된 적이 있다. 좀 어리둥절한 얘긴데 온난화는 의도적인 과대포장이며 그 주범이 이산화탄소라는 근거도 왜곡되었다는 것이 골자다. 논쟁의 홍수 속에서 기온과 해수면 상승은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예측을 앞지르고 있고 지난 50년간 자연재난의 피해 규모는 50배가 넘었다. 대만의 태풍 ‘모라꼿’ 피해에서 보듯 이들 재앙은 정치·사회적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교토 이후의 글로벌 기후체제를 도출하는 해법을 찾기는 성격상 매우 어렵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의 주요 원칙인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을 놓고 선진국은 ‘공통의’ 책임을 강조하고 개발도상국은 ‘차별화된’ 책임을 강조하는 논리로 세월이 흘렀다. 2년 전 발리 로드맵에서 ‘개도국의 자발적 감축행동’(NAMA·Nationally Appropriate Mitigation Action) 원칙이 보완됐으나 쟁점이 해소되는 듯하지는 않다.

며칠 전 인도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면서 ‘만약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다면…’이란 단서를 달고 국제 기준인 온실가스 배출의 ‘총량’ 대신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대목은 코펜하겐에서의 치열한 다툼을 예고한다. 신흥국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기술 이전과 재원 지원의 임무를 져야 하며 에너지 효율 향상에 의해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개도국의 절대량 감축 없이는 실효가 없다’는 선진국의 논리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달 2020년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2005년 대비 4% 감축 계획을 국제사회에 천명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의 명분을 세웠다. 이제 국민적 자부심과 역량을 결집해 녹색성장의 결실을 거두는 일이 남았다.

이번 회의를 보면서 필자는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 장면을 연상한다. 말만 무성했고 손에 잡히는 결실이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 대규모 논의의 장에서 열띤 토의가 진행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 했다. 이번 회의는 절반의 성공 이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선 안되면 차선이라도 합의를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글로벌 차원의 기후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리더십과 연관된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슈퍼파워의 퇴조와 국제기구의 위상 약화가 특징이다. 권력 이동과 멀티파워로의 재편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열린 사고와 거버넌스 리더십에 의해 큰 틀의 조율과 합의를 이룰 수는 없는 걸까. 선진 경제권과 신흥 경제권이 이해상충을 잠시 접어두고 차선의 솔루션이라도 찾는 것이 빈손 털기보다는 낫다. 그동안 기후변화 회의를 멀리 하던 미국,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100여개국 정상과 192개국 대표단이 몰려든 사상 최대의 매머드회의가 ‘소문난 잔치’로만 끝나 버린다면 기후변화 위기를 해결한다면서 수만 명이 엄청난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모여든 게 너무 민망스럽고 허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김명자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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