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하울의 움직이는 성

  • 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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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볼 게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짙은 감동을 선물했던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근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城)’이에요.》

[1] 스토리라인

19세기 말 유럽. 모자가게를 운영하는 소피는 마을로 나갔다가 잘생긴 청년 마법사 하울을 우연히 알게 돼요. 하지만 하울을 짝사랑해 온 황무지 마녀는 둘 사이를 오해해 소피에게 끔찍한 저주를 내려요. 소피는 하루아침에 90세 할머니로 변하죠.

가출한 소피는 황무지를 헤매다가 하울이 사는 ‘움직이는 성(城)’으로 들어가 하녀 생활을 시작해요.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던 소피는 어둡고 우울한 공기가 가득한 ‘움직이는 성’을 점차 변화시키죠. 전쟁을 막기 위해 밤마다 군대와 맞서온 하울의 외롭고 피폐해진 내면을 소피는 따뜻하게 치유해 주고, 결국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죠. 마침내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어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의 ‘반전(反戰)’, 혹은 ‘인류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릴지 모르겠어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이는 약간 표피적인 사고예요.

생각해 보세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세계가 평화를 되찾게 되는 까닭은 뭔가요? 바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맞섰던 하울의 용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울 혼자만의 힘으로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아니죠. 공포와 고독감을 느끼는 하울을 따뜻하게 감싸고 치유해준 소피가 함께했기 때문이죠.

하울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갔던 소피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클라이맥스에 집중해 보세요. 하울의 과거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소피는 과거세계를 떠나오면서 “기다려줘. 나는 소피야”라는 한 마디 외침을 남기잖아요. 하울은 소피의 이 말을 가슴에 담은 채 살아왔고, 기다림은 평생을 이어져 현재 세계에서도 결국 소피를 기다리게 되죠. 하울과 소피의 ‘믿음과 사랑’, 이것이 키워드였던 거예요.

황무지 마녀의 저주에 걸려 백발 노파로 변한 소피를 보세요. 그녀는 마법에서 풀려날 방법을 마지막까지 찾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가죠. 소피가 지닌 믿음과 사랑은 몹쓸 저주도 이겨내는 강력한 힘이었던 거예요.

[3] 생각 넓히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왜 하필 소피는 할머니로 변하는 저주에 걸릴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영화의 키워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무슨 얘기냐고요? 소피에게 내려진 저주는 결과적으로 ‘믿음과 사랑’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된다는 거죠. 만약 소피의 외모가 그대로 소녀였다면 소피를 향한 하울의 사랑이 진정 순수한 것인지를 우리는 가늠하기 어렵게 되잖아요? 하울이 소피의 외모와 젊음에 끌렸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90세 할머니의 외모를 한 소피를 하울이 사랑한다는 건 하울이 소피의 내면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죠.

외모가 추하게 변하는 건 소피만이 아니에요. 하울 역시 대낮에는 배우 이준기처럼 각종 액세서리로 치장한 ‘꽃미남’이자 ‘얼짱’이지만, 전쟁과 맞서야 하는 밤에는 피로에 지쳐 끔찍한 모습을 한 검은 새의 모습이죠. 소피는 하울의 이런 징그러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마치 무시무시한 야수의 외모를 뛰어넘어 야수를 진정 사랑하는, ‘미녀와 야수’ 속 미녀처럼 말이죠.

[4] 뒤집어 생각하기

영화에는 재미난 캐릭터들이 즐비해요. 허수아비 ‘무대가리’나 귀여운 불의 악마 ‘캘시퍼’, 그리고 짧은 다리의 강아지 ‘힌’이 그들이죠. 여기서 우리는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사뭇 종교적인 믿음 혹은 세계관을 눈치 챌 수 있어요. 바로 ‘애니미즘(animism)’이죠. 애니미즘은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과 자연현상처럼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에 속속들이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에요.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볼 때 하울이 사는 ‘움직이는 성’의 정체를 꿰뚫어볼 수 있게 돼요. ‘움직이는 성’은 이런저런 기계들이 어지럽게 맞물려 이뤄진 구조물이지만, 마치 생명이나 영혼이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잖아요? 움직이는 성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주고받는, 어떤 인성(人性)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죠.

‘움직이는 성’은 떼를 지어 등장하는 전투기나 군함과는 대척점에 있어요. 양쪽 모두 인간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기계문명의 결과물이지만, 이들이 갖는 의미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죠. ‘움직이는 성’은 하울 일행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따뜻한 기계’임에 반해 전투기와 군함은 살육과 파괴를 위해 사용되는 ‘차가운 기계’로 묘사되고 있죠. 영화는 ‘움직이는 성’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첨단 과학기술도 영혼을 가진 ‘인간’의 얼굴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5] 내 생각 말하기

이 영화는 전쟁 준비로 여념이 없는 국가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국왕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울을 비롯한 전국의 마법사와 마녀, 요괴까지 모두 국가에 협력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이들을 소집하죠. 하늘에는 전투기들이 자욱하게 떠다니고 바다 위는 전함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모습은 알고 보면 ‘군국주의(軍國主義)’를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가 제작된 일본 역시 군국주의의 과거를 가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할 조짐’이라고 우려하고 있어요.

‘군국주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군국주의로 가는 일본의 최근 움직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어떤 논리적 근거에서 나왔는지 말해보세요. 이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더는 싸우지 말고 차라리 도망치자”는 소피의 권유에 하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젠 더는 도망치지 않겠어. 이제 나도 지켜야 할 게 생겼기 때문이야. 그건 바로 너야.”

하울처럼 자신이 지킬 만한 ‘무엇’을 지닌 사람이 더 용감해질 수 있다는 말은 분명한 사실 같아요. 여러분이 지켜야 할 건 과연 무엇인가요? 사랑인가요, 성적인가요, 부모님의 기대인가요, 아니면 자존심인가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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