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돼지 입술에 립스틱’

  • 입력 2006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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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한 해 평균 3개의 립스틱을 쓴다고 한다. 한국은 화장 인구가 1200만 명이라니 한 해 3600만 개, 하루 10만 개씩 팔리는 셈이다. 립스틱은 경기(景氣)가 안 좋을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얘기도 있다. 여성들이 쇼핑하러 나갔다가 새 옷이나 핸드백을 살 수 없을 때 대신 립스틱이라도 산다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서 립스틱을 바꾸거나 더 짙게 바르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들에게 립스틱은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도구일지 모른다. ‘립스틱’이란 책을 쓴 제시카 폴링스턴의 말이 재미있다. “한 겹의 그 빨간 왁스는 여자들이 자기만의 은밀한 사적(私的) 공간에서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공적(公的) 공간으로 가는 여권(旅券)이자, 바깥세상과의 전투에 돌입하는 무기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의 홍보 관계자들에게 립스틱은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독(毒)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토리 클라크 씨는 최근 ‘돼지 입술에 립스틱’이라는 제목의 홍보 지침서를 펴냈다. 돼지에게 아무리 립스틱을 발라 줘도 돼지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홍보도 꾸미거나 감춰서는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보시대에는 모든 비밀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타격이 심하다 할지라도 진실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서평에서 “사냥총 오발사고를 내고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던 딕 체니 부통령에게 적절한 충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고 썼다. 그러고 보니 이는 바다 건너 우리의 정권 2인자에게도 들어맞는 내용 같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3·1절 골프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계속 립스틱만 바르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이 총리만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수 국민은 현 정부 3년의 국정(國政)에 낙제점을 매기는데,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홍보가 부족한 게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래서 ‘구제불능’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자초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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