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새내기 철학입문서’ 20선]<13>개념-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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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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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 실체의 개념은 어디서 왔나
◇개념-뿌리들/이정우 지음·산해

《“소크라테스는 ‘그대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신탁을 늘 음미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을 자주 오용하죠. 누군가가 잘못을 범하거나 잘난 척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엉뚱한 해석(?)입니다. ‘그대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대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곧 ‘그대는 미천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라는 뜻이에요.”》
존재, 실재, 실체, 본질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지만 본디 그 뿌리는 철학에 있다. 정확히는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에서 출발했다.

존재(存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on’이다. 영어로 ’being’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일자론(一者論)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 시절까지만 해도 영어 be동사에 해당하는 ‘einai’(on의 동사형) 동사에 ‘이다’와 ‘있다’란 두 가지 뜻이 동시에 담겼음을 분별하지 못했다. 서구어에는 대개 ‘이다/있다’의 반의어인 ‘아니다/없다’가 없다. 대신 ‘이다/있다’(be) 앞에 부정어(not)를 쓴다. 따라서 없음(be not)은 있음(be)을 전제로 한다.

이다와 있다를 동일시한 파르메니데스는 이 모순을 바탕으로 없다(無)와 아니다(不)를 넘어선 유일부동의 존재로서 일자(一者)를 주창했다. 하지만 플라톤 시대에 이르면 ‘이다’와 ‘있다’의 분별을 토대로 변화와 운동이 긍정되면서 존재와 대립하는 무(無)의 개념이 성립한다.

실재(實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to ontos on’이다. ‘정말 on(존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란 뜻으로 라틴어를 거쳐 영어 ‘reality’로 번역됐다. 이 실재는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감각적 현실을 넘어서는 무엇을 뜻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현실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리얼(real)하다는 표현이 현실에 충실한 묘사를 뜻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체(實體)는 ‘ousia’라는 헬라어에서 출발했다. 일상어로는 재산을 뜻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hyl^e)가 아니라 형상(eidos)이 실체에 가깝다고 봤다. 그런데 정작 그 라틴어 번역어는 hyl^e의 동의어인 hypokeimenon(밑에 깔려 있는 것)을 번역한 substancia가 됐다. 형상보다 질료를 강조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영향 때문이었다. 영어로 substance에 해당하는 실체가 ‘정확히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이란 유물론적 의미가 강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런 의미맥락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하지만 존재론에 해당하는 유물론에 대립하는 것은 형상철학이고 인식론에 해당하는 관념론에 대립하는 것은 실재론으로 구별해야 한다.

오늘날 일상어가 된 철학개념의 기원에 대한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의 이런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 1권이 원리와 자연, 존재와 우연 등 존재론과 인식론적 개념을 녹여냈다면 2권은 영혼과 선악, 정의 등 인성론과 윤리론적 개념을 풀어냈다. 동서철학사의 흐름을 함께 녹여냈기 때문에 일반 철학개론서를 뛰어넘는 깊이와 재미를 갖췄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와 들뢰즈 데리다 같은 현대 철학자에 비해 칸트나 헤겔 후설 등 근대 철학자를 다소 경원하는 시각의 편차는 못내 아쉽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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