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벤치스토리] LG 김태군은 ‘될성부른 포수’

  • 입력 2009년 8월 22일 09시 18분


#1. 2005년 3월. 부산고 고(故) 조성옥 감독은 막 입학한 1학년 투수에게 대뜸 말했다. “난 사실 널 포수로 뽑았다.” 김태군(20·LG)은 의아했다. ‘도대체 왜?’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8월27일, 조 감독은 결국 김태군에게 ‘포수 데뷔전’을 치르게 했다. 3학년이 되자 주장까지 맡겼다. 김태군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 누구도 쉽게 얻기 힘든 사랑을 받았어요. 좋은 포수, 좋은 주장이 동시에 되어야 한다고 늘 절 채찍질 하셨죠.” 조 감독의 특명을 받은 김성현 코치는 매일 야간 특훈까지 불사하면서 김태군에게 ‘기초’를 가르쳤다. 그래서 김태군은, 이달 초 세상을 떠난 조 감독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2. 2007년 대통령배대회. 김태군은 서울고전에서 3안타를 치고 도루 저지를 수차례 해냈다. 경기 후, 누군가 손짓을 했다. SK 감독에서 물러나 야인 생활 중이던 조범현 KIA 감독이었다. 조 감독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태군을 붙잡고 짧은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은 포수가 되라고 얘기해주는 거야.” 조 감독과의 짧은 대화는 ‘될성부른 떡잎’에게 큰 자신감을 안겼다. “아마 감독님은 그 때 일을 기억 못 하실 거예요. 아직까지 인사 한 번 못 드렸고요. 하지만 저로서는 무척 감사한 순간이었죠.”

#3. 2007년 8월16일. 2008시즌 신인 2차지명회의가 열리던 날. 김태군은 자고 있었다. 날짜를 하루 뒤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배가 흔들어 깨웠다. 잘 때 이유 없이 깨우는 걸 가장 싫어하는 김태군은 인상을 썼다. “형 LG에 지명됐어요.” 곧바로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형 LG에 2차 3번으로 뽑혔다고요.” 그 해 LG 스카우트로 일하던 선배 포수 김정민은 망설임 없이 김태군의 이름을 불렀다. 김정민이 마음을 굳힌 건 아주 사소한 한 순간. 폭투 3개를 던진 후배 투수에게 다가가 “잘 하고 있어”라며 다독이는 모습을 본 직후였다. 김태군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정민이 형께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한다”며 고마워했다.

#4. 2009년 8월27일은 김태군이 포수가 된 지 딱 3년째 되는 날이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만큼, 그에게는 의미가 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멘토’가 된 서효인 배터리 코치와 함께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린다. 경기 전에는 각종 잔심부름을 하느라 가장 바쁘게 뛰어다닌다. 하지만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김태군은 모든 게 신난다. 그를 발견하고, 키워주고, 인정해준 은인들을 늘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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