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정모]기억력 한계 극복하려면

  • 입력 2008년 9월 1일 02시 59분


사람들은 누구나 뛰어난 기억력을 지니기를 원한다. 공부하는 학생이거나 자신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이려는 회사원이라면 이는 더욱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기억력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며 기억을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착각은 기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이란 마치 사진 찍는 일과 같아서 주어진 사건이나 자극을 사진 찍듯 복사하여 자신의 머릿속 어디엔가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찾아서, 다시 말하면 물건 꺼내듯이 그냥 꺼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지심리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억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은 항상 능동적으로 의미를 엮어 구성한다. 기억은 구성이다. 대상을 사진 찍듯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스케치를 하듯 기억하여 넣는 일이다. 기억해 낼 때도 이전의 스케치와 비슷하게 스케치를 재구성하여 내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책상에 많은 물건을 올려놓지 못하듯이 인간 기억의 작업대가 가진 처리용량에 한계가 있다. 또 스케치를 하는 인지적 전략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기억해 넣을 때의 스케치1은 정확하지 않기 쉽고, 후에 스케치2로 재구성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 작업대의 용량 한계를 극복하며 스케치를 잘 구성해 기억을 잘할 수 있을까? 결정적 요인은 지식이다. 지식은 처리해야 할 용량 부담을 줄여주며, 의미 있는 좋은 기억 스케치를 만들어 내게 한다. 주어진 자극에 대한 적절한 지식이 없으면 많은 낱개 내용을 일일이 따로따로 기억해야 해 정보처리 부담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바둑에 대한 지식이 많은 고수와 그렇지 못한 초보자에게 실제로 대국한 바둑판의 바둑돌 위치를 기억하라고 하는 심리학 실험을 보자. 초보자는 돌의 위치를 낱개로 기억하려 하기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둑의 고수는 돌의 위치를 몇 개의 의미 있는 덩이로 기억하기에 기억해야 할 양이 줄어 쉽게 기억한다.

반면 바둑돌을 의미 없는 형태로 뒤섞어 놓으면 고수는 오히려 당황해하고 초보자보다 기억을 잘 못할 수 있다. 적절한 관련 지식이 있어야 기억해야 할 내용이 굴비 엮듯 의미 있는 덩이로 엮여 기억이 잘됨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런데 지식을 동원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작업에서 남이 해준 조직화, 스케치 그리기 전략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내 지식을 적용하여 내 나름대로의 인지적 전략으로 조직화, 스케치 그리기를 하여야 후에 기억에서 꺼낼 때 스케치2를 쉽게 재구성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기 특유의 기억 및 학습 전략을 스스로 체득하여 활용한다. 또 기억 관리 전략인 메타인지 기술이 풍부하다. 항상 자신의 인지적 전략을 점검하고 모니터링하고 개선한다. 반면에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이 무슨 인지전략을 쓰는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점검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기억 스케치를 잘 못 그려서 기억이 잘 안되고 이해가 불충분하고, 새로운 지식을 형성할 수 없고, 그래서 계속 공부를 잘 못한다.

지식의 빈익빈 부익부! 인지세계의 냉엄한 원리이다. 인지세계에서는 복권 당첨과 같은 갑작스러운 반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습 및 기억 기술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지도, 하루아침에 획득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인지적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올림픽 금메달 선수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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