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학을 달린다]경희의료원, ‘침묵의 암’ 간암, 다학제 진료로 해결책 찾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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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내과 등 6개과 의료진 모인 ‘간암 다학제진료팀’이 맞춤형 치료
환자 만족도-치료효과 모두 높아

김진호(가명·68) 씨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쇼크에 빠진 채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매일 막걸리를 한 병씩 비우는 애주가인 김 씨는 자신이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로 복부를 살펴보니 암이 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바 간암 4기였다. 주요 혈관까지 암 세포가 침범해있었고, 복강 출혈이 심해 바로 사망할 확률이 3분의 1을 넘었다.

경희의료원 ‘간암 다학제진료팀’은 우선 응급 경동맥화학색전술로 출혈을 멈춘 뒤 간의 절반을 잘라내고 혈관 내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간암이 재발하고 폐까지 암이 전이됐다. 간암 다학제진료팀은 환자의 상태를 수차례 논의하며 전신 항암치료와 방사선 장비인 토모테라피를 이용한 치료를 병행했다. 첫 간암 진단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최근, 김 씨는 간 기능을 양호하게 유지하며 좋은 경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반 동안 암도 재발하지 않았다.

경희의료원에선 소화기내과 등 6개 진료과목으로 구성된 ‘간암 다학제진료팀’이 간암 환자의 진단과 수술, 항암치료를 맡는다. 소화기내과 김병호 교수(오른쪽)와 심재준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논의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경희의료원에선 소화기내과 등 6개 진료과목으로 구성된 ‘간암 다학제진료팀’이 간암 환자의 진단과 수술, 항암치료를 맡는다. 소화기내과 김병호 교수(오른쪽)와 심재준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논의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6개 진료과 모인 ‘간암 다학제진료’
간암이라고 소화기내과나 종양혈액내과만 진료를 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환자 개개인에 적합한 ‘맞춤진료’와 ‘정밀의학’ 등의 치료 패러다임이 도래하며 다양한 진료과가 협진하는 ‘다학제 진료’로 전환되고 있다.

다학제진료는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이 모여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을 의논하고 최선의 치료 방향을 제시한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고 맞춤형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어 환자 만족도와 치료효과가 높다.

경희의료원 간암 다학제진료팀은 △소화기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종양혈액내과 △핵의학과 의료진으로 구성돼있다. 소화기내과는 간암의 진단과 치료를 맡는다. 외과는 간 이식, 간 절제술 등 수술적 치료를, 방사선종양학과는 토모테라피를 이용한 방사선 치료를 담당한다. 이 밖에도 영상의학과는 경동맥화학색전술을, 종양혈액내과는 항암치료를, 핵의학과는 인체에 무해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간암의 진단과 치료경과 판단을 담당한다. 모든 과정은 유기적으로 이뤄진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간암 다학제진료팀은 간암의 특성과 크기, 위치, 간 기능, 환자 연령 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경희의료원 간암 다학제진료팀을 이끌고 있는 김병호 소화기내과 교수는 “환자 입장에선 진료실에서 만나는 담당의사가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뒤에서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년 1만2000여 명 목숨 앗아가는 간암
우리나라는 간암 발생률이 특히 높다. 매년 1만2000여 명이 간암으로 숨진다. 2014년 통계청의 사망원인을 기준으로 간암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22.8명으로, 폐암(34.4명)에 이어 2위였다. 특히 간암은 40∼50대에 많이 진단된다. 5명 중 4명꼴로 남성이다.

간은 70% 이상 손상되기 전엔 자각 증상이 없다. 발견이 된 뒤엔 이미 진행 중이거나 위중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간암 환자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며 망연해한다. 간혹 증상이 있어도 B형 및 C형 간염이나 간경변증 등 다른 질환으로 착각해 암 진단 시기를 놓치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간암은 ‘중년 남성을 위협하는 침묵의 암’으로 불린다.

암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세포가 손상을 받았을 때 발생한다. 간암도 만성간염이나 간경화로 인해 간세포가 손상되는 과정에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잦은 알코올 섭취로 간이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면 발병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 중 간암을 앓았던 사람이 있을수록 발병 우려가 크다.

국내 간암 환자의 72%는 만성 B형 간염, 12%는 만성 C형 간염, 11%는 알코올성 간경화를 앓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 가지 만성 질환이 우리나라 간암(간세포암) 원인의 95%를 차지하는 셈이다.

초기 발견-예방이 무엇보다 중요
암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미리 막지 못했다면 초기에 발견하는 게 차선이다. 복부 통증이나 황달, 체중 감소 등 간암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간암이 생길 위험성이 높다면 주기적으로 복부초음파(경우에 따라 CT)와 혈액검사(알파태아단백수치)를 받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검사는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게 좋다. 간암은 다른 암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암 조직이 2cm 미만일 때 발견하면 완치 가능성이 높다.

경희의료원은 간암의 조기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 병원을 찾은 만성 B형, C형 간염과 간경화 환자를 자동으로 간암 검진 대상자로 분류해 관리한다. 6개월마다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담당 의료진에 통보한다. 특히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간암 발생 위험도를 자동으로 계산해 표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심재준 경희의료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40세 이상은 국가 암 검진사업을 통해 간암 검진 비용이 지원되고 있으니 술자리가 잦은 중장년 직장인이라면 예방 차원에서 꼭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생체 간 이식 성공한 경희의료원 간암 다학제진료팀
간암의 외과 치료는 간 절제술과 간 이식으로 나뉜다. 수술 치료는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인 간암 치료방법 중 하나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간암의 개수, 크기 및 위치, 간 기능의 상태, 환자의 연령 등 여러 가지 사항을 모두 고려해 최선의 치료법을 택해야 한다.

최근엔 간을 절제할 때 복강경(복부에 작은 구멍을 낸 뒤 특수 카메라를 넣는 것) 수술을 주로 활용한다. 개복 수술보다 흉터와 출혈이 적고 회복시간이 빠르며 통증도 적다. 간경변증이 심하지 않거나 암세포가 혈관을 침범하지 않았을 때 시행한다. 김범수 경희의료원 간 담도 췌장외과 교수는 “간 절제술은 간암 초기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만 조기진단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실제로 간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드물다”라며 “수술 후 크기가 줄어든 간이 제 기능을 찾을 때까진 오랜 시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 절제가 어렵다면 간 이식을 고려할 수 있다. 손상된 간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간으로 대체하는 수술법이다. 간경변증과 간암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이상적인 치료방법이다. 간을 이식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0%에 달한다.

간 이식은 뇌사자의 것을 받는 뇌사이식과 가족, 친척, 친구 등으로부터 받는 생체이식으로 나뉜다. 국내에선 생체이식이 더 많다.

경희의료원 간암 다학제진료팀은 1월 생체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환자는 간 이식 이후 특별한 문제없이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특히 간 기증자인 환자의 딸도 평소처럼 건강하다.

김범수 교수는 “생체이식은 검사를 통해 기증자의 간 기능과 크기를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이식한다”라며 “대부분 간 좌엽을 절제해 기증하고 수술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면 간은 재생작용을 통해 원상태로 회복하기 때문에 기증자에게도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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