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제주 ‘야생화 천국’ 오면 진짜 천국에 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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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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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한숙 원장이 10년간 일군 제주 ‘방림원’의 매력

22일 제주시 한경면의 야생화박물관 ‘방림원’을 찾은 가족 관람객이 야외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1시간가량 쏟아진 소낙비가 멈춘 직후라 흐린 날씨에도 식물들의 빛깔이 선명해졌다. 제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2일 제주시 한경면의 야생화박물관 ‘방림원’을 찾은 가족 관람객이 야외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1시간가량 쏟아진 소낙비가 멈춘 직후라 흐린 날씨에도 식물들의 빛깔이 선명해졌다. 제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2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의 방림원에 다다랐을 때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여름 야생화박물관을 찾을 때는 여러 기대를 품고서겠지만 탁 트인 정원의 푸름을 온전히 만끽하고픈 마음이 그 첫 번째일 터다. 더구나 제주 서쪽은 이 섬에서도 비가 적은 편이라니 굵은 빗줄기를 예상치는 못했다. 그러나 애초의 설렘이 되살아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조각상 ‘방림원 패밀리’. 이곳을 손수 만든 방한숙 원장(68)과 남편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73), 그리고 아들딸 및 손자손녀 캐릭터를 따 만든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보다는 아기자기한 정원에 어울릴 법한 손님맞이다. 실제로도 방림원은 ‘예쁜’ 정원에 가까웠다.

○ 국적을 불문하는 야생화 천국


방림원은 1만7000여 m²(약 5000평) 터에 세계 각지의 식물 3000여 종을 전시하고 있다. 수생(水生)식물, 양치(羊齒)식물, 고산(高山)식물 및 다육(多肉)식물, 난을 각각 테마로 삼은 4개의 실내전시관엔 낯선 생김새, 낯선 이름이 가득하다. 야외에도 팔도식물지도, 형제폭포, 방림굴, 방림동산 등 풍성한 볼거리가 있다.

제1전시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손고비(고란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가 관람객을 맞는다. 제주 토종인 손고비는 방림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제주 토종인 마삭줄(협죽도과의 상록 활엽덩굴나무)은 누워 있는 여인의 형상에 심어 ‘낮잠 자는 여인’이라는 작품명까지 달아두었다. 양치식물(관다발 식물 중 꽃이 피지 않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 300여 종을 주로 모아둔 제2전시관은 일명 고사리관으로도 불린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뉴질랜드 등 다양한 나라에서 수집한 것들이라 학문적으로도 귀한 자산이다.

제3전시관의 고산식물 및 다육식물들은 국적이 더 다양하다. 금매화(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는 백두산에서, 시로미(시로밋과의 상록 관목)와 솜방망이(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는 한라산에서 캐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뉴질랜드 브라질 크로아티아 네팔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다국적 식물들은 저마다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식물들을 한곳에 키우려면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을까. 방림원은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한 돈이 더 많다. 이를테면 추운 나라나 고산지역에서 캔 식물들을 키우는 땅 아래에는 찬물이 흘러가도록 관을 묻어 지열로 인한 고사를 막는 식이다.

“아이들(방림원에서 보유한 식물들) 비위 맞추기가 쉽진 않았지. 원예는 ‘원’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 놓았다고 그쪽 공부한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하더라고.”

난 전시관은 오직 사계절 내내 꽃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지난해에 추가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야생화가 봄에만 꽃을 피우지만 난은 종류에 따라 각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란다.

이날 방림원은 찾은 손지훈 씨(26)는 “여자친구가 꽃을 매우 좋아해서 데려왔는데 꽃이 대부분 졌을 때라 아쉽다”면서도 “희귀한 식물이 많아 좋았다. 기회가 되면 봄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방 원장에게 방림원을 한마디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야생화 천국이지. 이게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이여.”

○ 야생화를 향한 20년 내리사랑


방한숙 방림원 원장
방한숙 방림원 원장
충남 연기군 조치원 태생인 방 원장은 1966년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꽃에 ‘미친’(방 원장은 “나는 꽃에 미쳤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건 1980년대 초 남편의 일본 출장길에 동행했다가 다양한 철쭉꽃에 반하고부터다. 그 후 6월마다 도쿄도 우에노(上野)공원에서 열리는 철쭉 전시회를 포함해 다양한 꽃 전시회를 보기 위해 매년 5, 6차례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잠시 분재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야생화에 푹 빠졌다. 방 원장은 “처음에는 ‘타래난초’라는 꽃에 미쳤는데, 예쁜 야생화가 얼마나 많던지 새로운 종을 만날 때마다 매번 설레었다”고 기억했다.

‘봉숭아학당’이라는 모임까지 만들어 호미와 소독제, 신문지만 들고 해외 각지로 나가 가방 가득히 식물을 담아온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입국 시 ‘보따리상인’으로 오해받아 망신을 당하기도, 검역소에서 식물들을 몽땅 압수당한 적도 수차례였지만 그의 야생화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숙소 뒤편에 나지막한 산이 있으면 관광은 뒤편이었다. 예쁜 꽃, 신기한 풀은 무조건 소독을 한 뒤 신문지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상황. 물어볼 사람도, 함께 의논할 대상도 없었다. 그래서 세계를 다니며 진귀한 야생화를 채집해 와도 3분의 2는 죽어버렸고, 겨우 살려낸 식물들은 이름도 모른 채 키워야 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자주 다니던 강화도 적적사 인근에서는 벼락을 맞아 생을 마감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 비가 오는데도 산에 올라가자고 했으니 같이 벼락을 맞았던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 그래도 또 갔어. 그 대신 비올 때 호미를 손에 쥐고 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다신 안 했지.”

한때 야생화 붐이 일어 남들이 해외에서 가져온 식물을 암암리에 비싼 값에 팔 때도 그는 묵묵히 키우고 모으는 데만 집중했다. “식물을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재미가 없어.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봐야지 돈으로 보는 순간 애착이 없어질 거야”란 남편의 충고가 큰 지지가 됐다. 그렇게 모은 야생화는 경기 의왕시 청계분재단지에 마련한 비닐하우스 세 동을 가득 채우기에 이르렀다.

○ 5년간의 컨테이너 생활 끝에 이뤄낸 결실

방림원은 그에게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박물관을 일궈내야 했고, 정성껏 키워온 야생화들을 모조리 제주도로 옮겨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켜야 했다.

2002년 11월 3300m²(약 1000평)터를 매입했고, 이듬해 1월 방림원 조성을 위한 첫 삽을 떴다. 3월부터는 터 한쪽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의왕에서 제주까지 4.5t 트럭으로 15차례나 야생화를 옮겨왔다. 시간이 갈수록 계획은 점차 커졌고, 2005년 5월 정식으로 개관한 이후에도 투자는 계속됐다. 터는 5배로 늘었고, 2개뿐이던 실내전시관도 4개가 됐다. 총 투자금액은 어림잡아 60억 원.

‘잠깐’으로 시작했던 방 원장의 컨테이너 생활은 5년이나 지속됐다. 모든 식물이 10∼20년간 자신의 손으로 키워온 것들이니 그에겐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라도 자식들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는 게 이유다. 이필송 방림원 기획실장은 “박물관의 식물 하나하나, 자갈 하나하나 원장님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방 원장은 3년 전 서귀포시 법환동 사택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매일 오전 7시 반이면 차로 40분 거리의 방림원에 도착한다. 그러고는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정원을 거닐고 또 거닌다. 그냥 그게 좋아서란다. 조경전문가를 따로 둘 법도 하지만 박물관에 관한 모든 것은 소소한 것까지도 직접 챙긴다.

“야생화는 향은 별로 없어. 난 이렇게 예쁘게 핀 꽃, 그리고 꽃을 피워낼 줄기와 잎 자체가 너무 좋아. 게다가 내가 힘들게 모은 야생화들을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내가 생각해도 참 어려운 걸 해냈어. 그렇지?”

제주=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바로잡습니다]27일자 B4면

27일자 B4면 “제주 ‘야생화 천국’ 오면 진짜 천국에 온 느낌” 기사의 지도에서 북제주군, 남제주군은 2006년 7월부터 각각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통합된 행정구역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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