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신인작가로 뜬 86세 중견화가 그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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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로즈 와일리 드로잉 소품전… 연말 개인전 앞서 ‘맛보기’ 전시

‘프림로즈 같은 노란색 수영복을 입고, 1956-55(?)’라는 글귀가 적힌 2019년 작품 ‘노란 수영복’. 초이앤라거 제공
‘프림로즈 같은 노란색 수영복을 입고, 1956-55(?)’라는 글귀가 적힌 2019년 작품 ‘노란 수영복’. 초이앤라거 제공
80대인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86)가 ‘핫한 신인 작가’로 떠오른 건 76세이던 2010년이었다. 당시 그는 영국 남동쪽에 있는 켄트주의 16세기 시골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시골집에는 팔리지 않은 그림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러다 미국 워싱턴 여성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주목해야 할 여성’전에 영국 작가로 유일하게 출품하며 깜짝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와일리의 판화 22점과 원화 1점을 볼 수 있다. ‘내가 입던 옷’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가 과거에 입었던 옷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간결한 선 드로잉에 노란색만 칠해진 ‘노란 수영복’, 눈에 멍이 든 것처럼 푸른 안경을 과장해서 표현한 ‘블루’ 등의 작품이 있다.

와일리의 그림은 이집트 고대 문명부터 영국의 축구 선수 존 테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등 친숙한 소재를 경계 없이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밀레니얼 작가의 그림이었다면 눈길이 가지 않았겠지만, 시골 마을에 작업실을 둔 70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공책에 끼적인 낙서처럼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표현을 보면 왠지 모를 용기와 희망이 솟아난다. 지극히 회화적인 표현은 같은 영국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를 떠올리게 한다. 또 일상적 소재를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팝아트적 요소도 다분하다.

이번 전시는 대형 작품이 적어 아쉽지만 12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별도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어 ‘맛보기’용 전시로는 괜찮을 듯하다. 1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로즈 와일리#내가 입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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