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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노래나 불러 젖혀[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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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노래나 불러 젖혀[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임희윤 기자 입력 2020-01-24 03:00수정 2020-01-2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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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지코(가운데)가 화제가 된 신곡 ‘아무노래’의 뮤직 비디오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 그를 둘러싼 이들은 지코의 실제 친구들로, 이번 뮤직비디오의 파티 장면에도 같이 출연했다. KOZ엔터테인먼트 제공
임희윤 기자
오랜만에 노래방엘 갔다.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가 아니라 우당탕퉁탕 집단으로 몰려갔다. 특별한 팀이었다. 10년 전 동고동락했던 팀의 10년 만의 ‘홈커밍’ 팀 회식.

10년 전 그 시절 우린 지옥 같은 회식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2차로 노래방에 가면 술고래 팀장이 건네는 독주를 피하기 위해 모두 노래방 화면 앞으로 몰려나갔다. 착석하는 순간 술잔이 다가오므로. 어떤 명분으로든 궁둥이를 떼고들 있어야 하니까. 소녀시대, 카라, 애프터스쿨 같은 그룹이 인기를 얻던 시기. 팀장의 거룩한 술 세례를 집단으로 회피하기 위해 우리들 남자 넷은 ‘걸그룹’이 돼야 했던 것이다. 최소 대여섯 곡 연속으로.

‘걸그룹 작전’의 수뇌는 부팀장 격인 S 선배. 월요일 아침이면 S의 메시지가 울렸다. ‘주말에 인기가요들 봤나?’ 그날 밤 회식을 앞둔 우리는 대첩을 앞둔 제갈량이 동남풍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TV 속 군무의 일거수일투족을 눈과 머리에 담아 12시간 뒤 일사불란하게 재현했다. 인기 스타도 아니고, 클로즈업해 들어오는 불 켜진 3번 카메라 따위는 없었지만 좋았다. 그 순간 그 어두침침한 방에서 우린 별이 됐다.


#1.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는 우리에겐 지난 10년간 우울한 일이 많았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애먼 사랑노래나 목청껏 부르는 면면에서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어떤 인생도 축제는 아니지 않나. ‘우울해’와 ‘외로워’는 인간 감정의 진공을 채우는 성미 급한 에테르, 야속한 디폴트(default)라는 걸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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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분위기가 겁나 싸해/요새는 이런 게 유행인가’

지코의 ‘아무노래’가 요즘 인기다. ‘아무노래 챌린지(#anysongchallenge)’ 때문에 더 난리다. 곡 도입부의 건반 소리에 맞춰 손가락 까딱대기로 시작해 아양 떨 듯 움직이는 안무를 너도나도 따라해 동영상 서비스에 올린다. 재밌는 노래. 그러나 되뇔수록 신나지만은 않는 노래.

#3. 가사부터 그렇다. 의도했든 아니든 의미심장하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와 ‘요새는 이런 게 유행인가’를 결합했기 때문이다. 2, 3년 동안 연예계에 우울한 일이 많았다. 유명한 젊은 가수들이 숨지거나 연예계 그늘이 차례로 드러났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우울한 이모 랩(emo rap)을 하는 몇몇 래퍼들이 가사처럼 어두운 최후를 맞기도 했다. 음울하게 웅얼대는 랩이나 노래가 유행이긴 유행이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어/아무거나 신나는 걸로/아무렇게나 춤춰/아무렇지 않아 보이게’와 ‘누군 힘들어 죽겠고 누군 축제’, ‘좀 전까지 왁자지껄하다 한 명 두 명씩 자릴 떠’는 단순히 지코의 집 파티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닐 터이다.

#4. 리듬과 화성도 돕는다. 손가락 댄스를 유발하는 엇박자 건반 리듬, 즉 ‘뚱땅땅, 뚱땅땅!’. 그와 묘하게 대비되는 우울한 코드 진행. 레게톤(reggaeton) 장르와 라틴팝의 영향이 녹아 있다.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나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처럼 단순함과 중독성으로 무장한 음악적 무대장치는 그 자체로 우울의 커튼 사이로 파티를 재촉하는 은밀한 신호다.

#5. 이쪽 판에선 요즘 각종 챌린지가 유행이다. ‘#피버챌린지(박진영 ‘FEVER’)’, ‘#돈댄스챌린지(근수 ‘돈’)’…. 이들 노래는 따라할 사람을 모집한다. 따라 추고 부르게 만드는 뭔가를 만드는 것은 대중음악 창작자가 꿈꾸는 성배 가운데 하나다. KBS TV ‘전국노래자랑’이란 ‘챌린지’는 40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도 끝나지 않는다. 화수분이다.

#7. 따라 추고 따라 부르는 ‘챌린지’는 때로 초혼 의식이다.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 탓에 현재에서 떠난 자신의 혼을 부르는 초혼. 결코 실패하지 않는 도전이다. 거대한 삶의 파도, 미련과 걱정을 잠시 잊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어떤 노래의 주인공이 ‘나’가 될 때 그 노래와 그 사람은 별이 된다. ‘아무노래’의 인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8. 한 번뿐인 삶의 진짜 의미란 무엇일까. 우리는 과거의 장막과 미래의 안개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노래와 춤은 한 번뿐인 지금, 존재하는 현재를 향한 승전가다. 어젯밤 노래방 전우들에게 아침 문자를 보냈다.

‘다들 정말 여전들 하시더군요(나 포함). 즐거웠어요. 고마웠어요. 또 뭉쳐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아무노래#아무노래 챌린지#리듬#화성#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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