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 쓰레기 처리 비용 누가 부담하나… 갈등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3일 2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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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한 동 지하실에 의자, 책상, 인형 등 생활쓰레기가 버려져 있다(왼쪽 사진). 이 아파트 28개 동 각 지하실에 이런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은마아파트 주민 2명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아파트 주거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강남구청 안에서 농성 중인 모습.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한 동 지하실에 의자, 책상, 인형 등 생활쓰레기가 버려져 있다(왼쪽 사진). 이 아파트 28개 동 각 지하실에 이런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은마아파트 주민 2명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아파트 주거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강남구청 안에서 농성 중인 모습.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당장 살고 있는 주민의 환경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온 관심이 재건축에만 쏠려 있어요.”(세입자 A씨)

13일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단지 게시판 곳곳에는 구에서 발행한 ‘공동주택 관리실태 민원조사 결과 통보문’이 붙어 있었다. 여기엔 지하실 쓰레기에 대해 “즉시 시정 가능한 사항을 20일까지 제출하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동별 지하실에 무차별적으로 쌓인 쓰레기더미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며, 강남구에 민원을 제기한 결과다.

당시 입주민들은 “아파트 측이 지하실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웠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청소를 거부했다”고 탄원했다. 이에 구는 지난해 11월 4~13일 현장 조사를 벌인 뒤 ‘쓰레기 출처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79년 준공 이래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현재 쌓여 있는 쓰레기 양은 적어도 2300t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구의 개선 권고에도 입주자대표회의 등은 여전히 ‘비용 문제’를 들며 처리에 소극적이다. 대표회의 관계자는 “아직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예정된 일정은 없다”며 “정확한 양을 추정하기 어려운데다, 세입자와 소유주 간에 비용 부담 문제가 있어 당장 조치는 어렵다”고 말했다. 동대표가 모인 입주자대표회의는 100% 집주인들로 구성돼있다.

실제로 행정지도 처분이 내려진지 2주가 넘었지만, 13일 찾은 지하실 상황은 지난달과 별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잠겨있었지만 일부 문이 열린 곳은 녹슨 가전제품 등 생활 폐기물이 가득했다. 멀리서부터 매캐한 냄새가 밀려왔다.

현장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대다수가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했다. 문제는 누가 비용을 부담하나였다. 주민 B 씨는 “세입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 아파트 측에서 부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면 아파트에 살지 않는 집주인들은 수억 원이 들 쓰레기 처리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구청 관계자도 “법적으로만 따지면 아파트에서 발생한 생활 폐기물 처리는 세입자 부담이 원칙”이라고 했다.

관리 감독 주체인 강남구도 난처하다.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사유지’라 강제로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조치를 강요할 수 없다. 개선을 권고할 순 있어도 강제사항이 아니다. 구청 측은 “주민 갈등이 깊어지는 거주 환경의 문제인 만큼,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겠다”면서도 “법적으로 직접 관여가 어려워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일부 아파트들이 주거지보단 투자대상으로 변질된 결과가 이러한 갈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거지가 투기 목적이 우선되며 살아가는 공간이란 가치가 퇴색됐다”며 “다른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게 어렵다면 정부의 개입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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