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위기 바이러스[DBR]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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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위기는 좀비와 같다.”

기업의 위기관리 대응법을 연구하는 티머시 쿰스 미국 텍사스A&M대 교수는 요즘 기업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겪는 평판의 위기, ‘소셜미디어 위기’는 마치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바이러스처럼 속수무책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들이 겪는 거의 모든 위기나 스캔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시작하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증폭되고 있다. 과거 소수의 제보자 또는 언론 보도로부터 위기가 시작되거나 증폭되었던 것과 다르다. 올 상반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임블리 사태’가 대표적 예다.

이 사건은 한 패션·화장품 업체에서 운영하는 여성 온라인 쇼핑몰 ‘임블리’에서 구입한 호박즙에서 곰팡이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한 소비자의 불만에서 촉발됐다. 그저 단순한 제품 이물질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소셜미디어에서 위기를 증폭시키고 확산시키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는 ‘위기 바이러스’라는 관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바이러스는 전염성 병원체의 일종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번식할 수 없으나 다른 생물체의 세포로부터 유의미한 자원이 공급될 경우 빠른 속도로 확산, 변형돼 번식한다. 소셜미디어 위기 역시 일부 소비자나 직원이 가진 불만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해서 무조건 위기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기업이 적절히 대응하면 소비자 불만 처리 차원에서 해결되거나 다른 이용자의 지지를 얻지 못해 소멸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문제가 됐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바이러스가 번지며 파국을 맞게 된다.

구체적으로 소셜미디어 위기 바이러스는 크게 6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부인(否認) 바이러스다. 사실과 다른 오해나 루머에 대해 부인할 수 있겠지만 실수나 잘못을 한 상태에서 사태를 우선 덮겠다는 의도로 부인하거나 거짓 약속을 했다가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 둘째, 셀럽(celebrity·유명인사) 바이러스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유명인의 홍보나 사용 후기는 일반인에 비해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훨씬 크다. 마찬가지로 후폭풍도 크다.

셋째, 소송 바이러스다. 소셜미디어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명예훼손 등의 법적 형태로 공격할 경우 해당 이슈는 증폭된다. 정당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기업-소비자 간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넷째, 분노 바이러스다. 상호 소통을 중시하는 소셜미디어에서 정당한 수위의 불만을 표현하는 댓글을 운영자, 즉 기업이 일방적으로 삭제하거나 원본 게시글을 지워 잘못을 은폐하려는 등의 행동은 그 자체로 분노를 증폭시켜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든다. 다섯째, 공감 바이러스다. 일부 소비자가 올린 불만에 대해 유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공감하고 소문을 내기 시작하면 부정적 정서가 빠르게 확산된다. 여섯째, 공식 바이러스다.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된 이슈가 언론은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 등 공신력을 지닌 매체나 조직에서 공식화됨으로써 이슈는 더욱 확산된다.

안타깝게도 임블리 사태는 기업의 최초 대응과 지속적인 조치가 위에서 언급한 6가지 위기 바이러스 모두를 활성화한 사례였다. 곰팡이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호박즙에서 발견됐다는 고객 반응이 처음 올라왔을 때 임블리는 그동안 먹고 남은 제품에 대해서만 교환·환불조치를 해주겠다면서 문제의 상품을 계속 판매했고 해당 고객의 댓글을 삭제했다. 이는 임블리의 모델이자 당시 80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던 임모 씨에 대한 소비자들의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이후 임블리 쇼핑몰과 관련한 각종 피해 사례와 불만이 제기되고 확산됐지만 성의 없는 대응과 고객 댓글들을 삭제하고 게시판과 계정 운영을 중단하는 등 ‘불통(不通)’으로 공분이 커졌다. 심지어 이 업체는 임블리를 상대로 소비자운동을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임블리쏘리’)을 상대로 영업방해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다 패소하는 악수를 뒀다.

임블리 사태가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며 2019년에 가장 주목할 만한 기업 평판 위기 사건이 된 이유다.

이 원고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87호에 실린 ‘고객들이 항의하자 댓글 기능 폐쇄, 불통 조치가 소비자 분노 불 지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허주현 마콜컨설팅그룹 상무 joohyun.huh@macoll.com
#소송#임블리#기업 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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