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부업체 금리 제한의 역설… 사채로 등떠밀리는 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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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체에 퇴짜맞은 저신용자들, 사채 쓰다 연체이자 눈덩이
대부업 ‘최고금리 제한’의 역설

《제도권 금융의 끝단인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해 고리(高利)의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나는 서민이 늘고 있다. 27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낸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 대부업체 신규 대출자는 2017년 54만7900명에서 올해 27만730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이 추세라면 올해 대출자(55만4600명)는 2년 전보다 49만 명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대부업계에선 작년 2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24.0%로 인하되자 자금 조달비용이 높은 대부업체들이 수익을 맞추기 어려워 대출 문턱을 높였다고 지적한다. 서민금융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에서 거절당한 사람은 54.9%로 2년 전(16.0%)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업계 1위인 산와머니는 현재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불어나는 빚보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알게 되는 게 더 무서워요.”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3·여)는 올 초 사채를 쓰기 시작한 뒤 불안감에 떨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사금융업체에서 250만 원씩 세 번을 빌려 열흘에 한 번씩 25만 원을 갚고 있다. 하지만 연체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채의 굴레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 씨는 “바보가 아닌 이상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업자들이 주변에 알릴까봐 신고도 못한 채 돈을 꾸역꾸역 갚고 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대부업체(나이스신용평가에 등록된 69곳 기준) 신규 대출자가 2년 전의 절반으로 줄면서 저신용 대출 수요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금융 업체 중에서 금융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지 않은 곳은 불법이다. 이들 업체는 대출 초기부터 아예 지인 연락처를 확보해놓고, 빚 상환이 늦어지면 협박 수단으로 활용한다. 피해자들이 막상 경찰이나 금융당국에 신고해도 실질적 도움을 얻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등록 대부업 신고 건수는 2015년 1220건에서 2018년 2.4배인 2969건으로 증가했다. 박덕배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불법사채 피해를 당하고도 사채업자들에게 보복을 당하거나 혹시라도 지인에게 노출될까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사람을 고려하면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대전에 사는 사금융 이용자 정모 씨(35)는 “업자들이 계약서에 부모, 형제, 직장동료 등 지인 10명의 연락처를 다 적으라고 했다”며 “연체 기미가 보이면 ‘회사에 전화한다’는 말부터 꺼내니 어디 알릴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막상 경찰이나 금감원을 찾아봤자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고 되돌아오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증거 부족 때문에 당국이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경남 창원시에 사는 홍모 씨(27·여)는 “사채업자의 독촉에 너무 괴로워 금감원에 상담을 했더니 ‘증거가 부족해 조사하기 힘들다’는 말만 들었다”며 허탈해했다. 경기 구리시에 사는 양모 씨(36)도 “지난달 초 경찰을 찾아갔더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냥 대부금융협회를 소개해주더라”고 전했다.

불법 사금융이 활개 치는 건 법정 최고금리가 지난해 2월 연 24%로 인하된 여파가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대부업체들이 금리 인하 뒤 수익성이 떨어지자 연체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자들을 안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업체에서 퇴짜를 맞은 이들은 사금융에 흘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법을 제정한 2002년 연 66% 이후 꾸준히 낮아졌다. 최고금리의 인하는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금리 상한을 지키도록 규율해 서민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감안해 수시로 인하를 요구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선 벌써 ‘최고금리 추가 인하’ 얘기가 흘러나온다.

문제는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합법 서민금융기관인 대부업 영업이 오히려 어려워지면서 저신용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국내 대부업체 1위인 산와머니(산와대부)는 올 들어 신용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대부업체 대출 잔액은 반기 기준으로 2014년 12월 말 11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말 17조4000억 원으로 계속 오름세를 보이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17조3000억 원으로 처음 꺾였다. 대부업체 수도 2010년 이후 40%가 감소했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대부업체들이 서민금융을 계속 공급할 수 있게 당국이 자금조달 규제 등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남건우 woo@donga.com·조은아 기자
#대부업#사채#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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