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마침내 새판 짜기…‘영변+핵동결’ vs ‘조건부 제재 완화’

  • 뉴시스
  • 입력 2019년 10월 2일 0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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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5일 예비접촉-실무협상…北 "관계 발전 기대"
'연락사무소'와 '종전·평화선언' 등 의제화 가능성
결국 비핵화 범위와 상응조치 수준의 조합이 관건
영변 시설 폐기+핵동결 vs 조건부 제재 완화 논의
스냅백 조항 '가역적' 제재 완화 논의할 가능성도
"美, 안보리 제재 안 건드리려…개성공단·금강산 대안"
"北, 예고성 담화로 美에 준비시간 줘…정상회담 의지"

북미가 ‘하노이 노딜’ 이후 7개월여 만에, 6·30 판문점 회담 3개월여 만에 본격적인 새판 짜기에 들어간다.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해온 북한, 이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등으로 호응해온 미국이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1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조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최 제1부상은 담화에서 “우리 측 대표들은 조미 실무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조미관계의 긍정적인 발전이 가속되기를 기대한다”며 성과 도출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북한과 미국은 장외 여론전을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올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맞섰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민수용 제재 완화’ 카드를 묵살했던 기존의 협상 전략을 바꾸지 않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교착이 장기화되자 북미 정상은 지난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정상회담을 열어 실무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박차를 가했고, 미국 측에서는 ‘불량행동’ 등의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경질 요구 등으로 응수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경색됐다.

전기를 마련한 것은 미국 측이었다. 실무협상 미국 측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싱가포르 정신을 언급하며 ‘적대 극복’과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치자 북한은 최 제1부상 담화에서 ‘9월 하순’ 실무회담 개최 제의로 호응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악역’ 볼턴 보좌관 전격 경질로 화답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보좌관 경질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은 하노이 실패를 만회할 정도의 합의를 내놓을 수 있을 가능성을 읽었기에 실무협상 재개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관측이다.

재개될 실무협상에서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구체화하고, 거기에 제재 완화 문제와 한반도 안보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그림 그리기가 시작될 거라는 전망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비핵화 범위와 상응조치 수준을 얼마나 잘 조합하느냐가 관건이다.

북미 정상은 지난해 싱가포르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관계 설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에 노력하기로 했다. 북한에 대한 상응조치는 이 조항들을 구체화하는 방식에 한미훈련과 제재 완화 관련한 카드들이 덧붙여지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점은 연락사무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의 시작점은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 등 선언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다”며 “다만 미국은 다른 나라에 불가침 조약을 해준 적이 없기 때문에 북미 양측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의체 구성’ 정도에서 우선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비핵화 문제 관련해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알파(+α),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동결 문제를 논의하며 비핵화 시작점의 구체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완전한 ‘빅딜’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틀에서 포괄적 합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특히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 차원의 제재 완화 문제가 ‘조건부’로 논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3월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은 외신 대상 회견 발언문에서 “(하노이 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제재를 해제했다가도 조선이 핵 활동을 재개하는 경우 제재는 가역적’이라는 내용을 포함시킨다면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신축성 있는 입장을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노이 회담 당시 북미 정상은 합의 사항이 이행되지 않으면 상응조치들을 무효화하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이 들어간 ‘하노이 선언’ 채택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으나 미국 측 참모진, 볼턴 보좌관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제재 면제 관련해서는 스냅백 조항이 여전히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 문제에도 스냅백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며 “이것도 부담이 된다면 ‘비핵화 행동’ 이행을 단서 조항으로 한, 예를 들어 합의가 일정한 수준으로 이행이 되면 제재 관련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접점을 찾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제재 문제는 당장 문안에 담지 않고 구두 합의 정도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아울러 “안전 보장의 안보적 측면에서 양측이 한미훈련의 ‘지속적 유예’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중심의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만큼 제재 문제에 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일단 안보리 제재의 틀은 흔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핵 동결 카드까지 꺼낸다고 하더라도 안보리 제재는 건드리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대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정도를 제시하고 나머지 부분은 싱가포르 합의 구체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북한이 만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북한에서는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요구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참모진들을 무시하고 이를 수용하긴 쉽지 않다”며 “결국은 안보리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카드를 제시했을 때 북한이 그것을 받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양측이 단시간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실무협상 재개를 공식화한 이후 ‘예고 담화’를 통해 미국이 준비할 시간을 주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을 최종 목표로 이견을 좁히기 위한 만남이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최선희 담화를 시작으로 ‘예고성 담화’를 내면서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왔다. 또 이번에는 실무협상 날짜도 지정했다”라며 “이것은 기존의 접근 방식과 달리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게끔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홍 시장은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상당한 격론이 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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