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줄 건데?’ 편의점 재계약 시즌, 뒤바뀐 갑·을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30일 1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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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내 편의점 폭발적 증가
계약 단위 5년 올해 하반기 재계약↑
업계, 점주 위한 복지 정책 쏟아내
집토끼 지키고 여차하면 산토끼도

국내 편의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2014년이다. 편의점 가맹 계약은 통상 5년 단위로 이뤄진다. 올해 하반기부터 ‘편의점 재계약 러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다. 국내 편의점 수는 4만 개를 넘겨 포화 상태다. 신규 출점이 쉽지 않아 매장 수를 늘리려면 편의점 업체들은 점주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간판 바꿔 달기’를 설득하거나 간판을 바꿔 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최근 업계는 재계약을 위한 치열한 눈치싸움에 들어갔다.

편의점업계 등에 따르면, 2014년엔 1241개 매장이 새로 생겼다. 이듬해엔 3348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고, 2016년엔 4614개가 또 추가됐다. 2017년엔 5307개가 늘었다. 그사이 국내 편의점 수는 지난해 기준 4만2071개가 됐다. 점포 1개당 인구수는 1227명으로 역대 최저치다. ‘편의점 왕국’이라는 일본보다도 적다.

공격적인 출점은 점포당 매출 증가가 출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배권 소매점 출점 기준을 강화해 신규 출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지난 4년간 키워드가 ‘점포 확장’이었다면, 재계약 건수가 쏟아지는 올해부터 4년간 키워드는 ‘점포 지키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상반기에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 업체가 앞다퉈 가맹점주를 위한 복지 정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웨딩 플랜 서비스, 산후 조리 지원, 요양보호사 서비스, 법률 서비스 지원, 점주 자녀 채용 우대, 자녀 학비 지원, 경조사 시 본사 직원이 점포 관리 등 굳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본사가 점주 관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항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 채널 중에 가장 실적이 좋고, 앞으로 전망도 나쁘지 않은 게 편의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자사 점포를 타사에 내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집토끼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간판을 바꿔달게 할 수 있으면 더 좋다”고 했다. 일례로 올해 2분기(4~6월) GS25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1% 늘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본사가 갑이고, 점주가 을이 아니다. 점주가 갑이 되고, 본사가 을이 됐다. 매출 높은 점포를 운영하는 점주는 각 업체 직원을 불러 “뭘 해줄 수 있냐”며 거래를 제안한다. ‘나와 계약하고 싶으면 현금으로 몇 억을 줘야 한다’는 식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편의점주가 모인 카페에서는 본사와 ‘딜’하는 방법을 공유한다. 서울 강동구에서 10년 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모(55)씨는 “편의점도 점주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매출 차이가 크게 난다. 능력 좋은 사장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점주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면서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점주 요구를 일단 최대한 들어보자는 기조”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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