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살문 조각보에 눈이 휘둥그레… “갈등 심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1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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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작가
이선희 작가
조각보는 천조각을 이어서 만든 전통 보자기다. 네모난 형상, 세모난 모양의 자투리 천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보자기가 된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KDCF갤러리에서 열린 ‘채윤 이선희 문양시접 조각보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평소 익숙한 네모, 세모꼴의 직선형 조각보와 달랐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꽃살문 문양으로 바느질한 화려한 조각보가 관람객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만든 주인공은 경기도 박물관 규방공예학교 강사인 이선희 작가(57). 2000년부터 전통 규방공예를 시작한 그는 “조각보의 아름다움은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에 있다”며 “계층과 세대갈등이 심각한 요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조각보라고 하면 ‘흥부 마누라 치맛자락’을 연상시키는 서민적 예술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늘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직선 조각보 대신 곡선모양의 조각천을 이어붙여서 문양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수년간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가며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2016년 경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나온 책자를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의 꽃살문 사진이었다. 나무를 통으로 깎아서 만든 꽃살문양이지만, 반복되는 디자인 패턴으로 조각조각 이어붙인 형태가 조각보와 똑 닮았다. “아, 이거구나. 이걸 보자리로 만들어야겠구나!” 그는 경주 기림사로 달려갔다.


“새벽에 아침에 동틀 때 갔는데, 꽃살문의 모양을 보니까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처사님이 문을 열어 젖히고 계셨는데, 죄송한데 꽃살문을 보고 싶어서 왔으니까 다시 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죠. 안으로 들어가서 실루엣처럼 창호지로 들어오는 빛살을 보면서 또한번 감동했습니다.”

그는 “민가에서는 ‘아(亞)자문’ ‘만(卍)자문’ 같은 직선모양의 기하학적 문살 밖에 쓸 수 없었는데, 꽃살문은 조선의 5대 궁궐의 정전과 사찰의 중요한 건물에만 쓰였던 귀한 문양”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 경희궁 숭전전을 비롯해 내소사, 신흥사, 송광사, 범어사, 월정사 등 유명 사찰의 매화·국화·연꽃·모란·살구·금강저 꽃살문 등에서 본뜬 60여개의 문양시접을 만들었다. 종이접기를 하듯 산모양, 입술무늬의 문양시접을 여러개 바느질해 이어붙이다 보면 어느덧 매화꽃이 되고, 불꽃도 되고, 거북이도 되는 신기함이 그의 조각보 예술이다.

이 작가의 ‘문양시접’은 전통 조각보에 처음으로 곡선형태의 문양을 도입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말 그대로 옛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역작이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화한 60개의 전통 꽃살문 문양시접을 일반에 공개해 자유롭게 조각보로 만들게 했다. 이 문양시접을 국제보자기 포럼에서도 발표했고, 일본에서도 강의를 하기도 했다. 자신이 독창적으로 디자인한 ‘삼잎칠보문양’은 저작권 등록을 마쳤고, 가방과 접시 등의 디자인에 활용한 생활소품도 선보였다.

그는 “한국의 전통 꽃살문양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디자인”이라며 “외국의 유명 패션회사에서도 꽃살문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는 데 우리가 더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삼잎칠보문양을 저작권 등록을 한 이유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남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전통을 현대화한 디자인을 개발하면 무궁무진한 비전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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