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사태 새 국면[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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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6·4 톈안먼 사태가 벌어진 이듬해인 1990년 처음으로 홍콩섬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톈안먼 시위 주동자와 희생자 가족이 직접 참석해 분위기를 달궜다. ‘핑판류쓰(平反六四·6·4재평가)’ 현수막을 들고 평화적인 거리 행진을 벌이는 시민들 옆에서 경찰은 교통을 통제하며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홍콩 반환 후 양상은 달라졌고 2014년 경찰이 뿌리는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든 시민들에 대한 강제 진압이 전환점이 됐다. 이제 시위 진압에 인민해방군이 투입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시위나 대응 방식 모두 달라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군 사령부였던 홍콩섬 옛 ‘프린스 웨일스’ 빌딩에 본부를 둔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육해공군 합쳐 6000여 명. 본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시내로 나올 때는 물론 내부에서도 가급적 군복을 입지 않을 정도로 로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중국 당국이 29일 군 개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홍콩 기본법에 관련 조항이 있다”고 답했다. 요청이 있으면 출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권력 공고화에 매진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강경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주눅 들지 않겠다는 태도다.

▷두 달째 이어지는 시위 현장에 과거 식민지 종주국 영국의 유니언잭이 입법원(의회)에 걸리더니 28일엔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등장했다. 영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든 시민도 있었다. 중국이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홍콩에 국제사회가 힘을 보태 달라는 몸짓으로 보인다.

▷반환 당시 홍콩 주민 상당수는 50년간 보장받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기간 동안 ‘홍콩의 중국화’보다는 ‘중국의 홍콩화’ 가능성이 크다는 자신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붉게 물들어 가는 속도가 빨라지자 위축되는 자유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중국 대륙에서 철조망을 넘어 홍콩으로 경제 난민이 탈출했던 광둥성의 접경 도시 선전의 경제 규모가 지난해 홍콩을 추월할 만큼 경제도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었다. 외부의 자본과 기술, 선진 경영기법 등의 통로였던 홍콩의 역할과 비중이 떨어지면 홀대도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높다.

▷최근 화교권인 싱가포르로의 이민이나 유학 등을 물색하는 홍콩인이 급증했다고 한다. 시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은 송환법이나 폭력배들의 대낮 ‘백색 테러’만이 아닌 것 같다. 흐려져 가는 정체성과 불안한 미래 속에 추락하는 위상에 대한 자괴감이 부글부글 끓는데 경직된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가 기름을 부은 것은 아닐까.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홍콩시위#6.4 톈안먼 사태#톈안먼 시위#홍콩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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