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1,8부두’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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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 갑문-강제노역 현장 등 한국 근현대사 140년 족적 남아”
교수 등 30여명 18일 발기인 모임

1918년 재래식 갑문이 완공된 인천항 1부두 모습(왼쪽 사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 화도진도서관 제공
1918년 재래식 갑문이 완공된 인천항 1부두 모습(왼쪽 사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 화도진도서관 제공
인천 시민들이 개항지인 인천항 1, 8부두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운동에 나섰다.

인천지역 향토사학자 교수 소설가 화가 시민단체회원 등 30여 명은 18일 인천 중구 하버파크호텔에서 ‘인천항 1, 8부두 유네스코 문화유산등재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발기인 모임을 갖는다. 옛 인천지방경찰청이 있던 하버파크호텔 자리는 인천항의 모태인 제물포항 바로 앞 갯벌이었다.

추진위 발기인들은 한국 근현대사 약 140년의 족적이 고스란히 남은 인천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1883년 개항해 구한말 최대 상업항구로 출발한 인천항은 당시 유일의 군항이자 상업항이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하역작업에 어려움을 겪자 1906년부터 근대식 항구시설을 갖췄다.

육지와 가까운 1부두에서 전천후 하역작업이 가능하도록 한 갑문은 1911년 착공해 1918년경 완공했다. 1914년 인천감리서에서 투옥생활을 하던 백범 김구는 1부두 축조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부두 벽체와 계선주(繫船柱·배를 정박할 때 줄을 걸어놓던 쇠고리)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1902년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떠나는 한국인들이 인천항에서 배를 탔다. 한국 최초의 이민선 겐카이호(號)는 121명을 태우고 1902년 12월 22일 현재 경인전철 인천역 바로 앞 제물포항에서 출항했다. 대부분은 인천과 경기 황해도에서 온 기독교인이었다. 이 중 인천 내리교회 교인만 50명이 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7년의 인천항 모습을 담은 사진들에 따르면 1부두에 갑문이 들어서면서 4500t급 선박 3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었다. 1935년부터 8000t급 선박이 입항할 수 있도록 부두 확장 공사가 진행됐다. 1974년 동양 최대 갑문이 생기면서 1부두에서 8부두까지 커진 인천항에는 최대 5만t급 선박이 들어온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최정철 인하대 교수는 15일 “발기인 모임 이후 인천시와 민관협력체를 구성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갈 계획”이라며 “개항에 이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1, 8부두 시설을 최대한 보존하고 주변 개항장문화지구와 연계해 잘 가꾸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진위 측은 부산항 원형보존 방침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부산시는 1912년 근대식 항구시설을 갖추게 된 부산항 북항1부두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항#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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