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개발의 심장부… 두차례 동결 약속해놓고 재가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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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1박2일 핵담판]北-美협상 쟁점 ‘영변핵 영구폐기’

북한 영변 핵시설이 북-미 하노이 핵 담판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이자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과거 1, 2차 북핵 위기 때도 핵폭탄 원료(핵물질)의 주요 생산거점이자 핵 관련 시설이 밀집한 이곳의 폐기 여부가 비핵화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였다. 미국이 이번에도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비핵화 조치의 기준으로 간주하면서 여기에 영변 외 ‘플러스알파’(다른 핵·미사일 시설 폐기)를 북한에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반세기 핵무력 증강 역사의 총본산으로 내세우며 그에 걸맞은 상응조치를 요구하면서 마지막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 최소 4차례 핵무기급 Pu 추출


북한은 1962년 평양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뒤 핵시설 조성에 본격 착수했다.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약 891만 m²) 규모의 부지에 1963년 도입한 소련제 연구용 원자로(IRT-2000) 등 400여 개의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영변 핵시설 중 가장 핵심은 5MW 원자로다. 영국의 콜더홀 흑연감속로를 모델로 1979년 자체 기술로 착공해 198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연소시킨 뒤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을 재처리하면 핵무기급 플루토늄(Pu)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2002년 이후 최소 네 차례 이상 재처리를 통해 확보한 플루토늄 일부를 핵실험용 폭탄 제조에 사용하고 현재 50여 kg을 보관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 정찰위성은 5MW 원자로의 열기와 증기 방출 여부 등을 추적 감시하면서 재가동 징후를 파악해 왔다.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은 북한 핵개발의 ‘일등공신’과도 같은 시설이다. 1985년에 착공된 뒤 1994년 제네바합의로 건설이 중단됐다가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200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추방한 후 나머지 설비를 완공했다. 길이 190m, 폭 20m의 6층 건물로 폐연료봉에 든 핵물질을 화학적으로 추출하는 퓨렉스(PUREX) 공정을 갖추고 있다.

2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킨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은 또 다른 핵심 시설이다. 북한은 2010년 미국의 대표적인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이 시설을 서방세계에 처음 공개했다. 당시 헤커 박사는 “영변에 설치된 2000개의 원심분리기에서 연간 40kg 정도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에 이 시설의 규모를 두 배가량 확장하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금은 4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면 연간 60∼80여 kg의 HEU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영구 폐기 합의해도 갈 길 멀어

통상적으로 핵시설 폐기는 ‘동결→신고·검증→불능화→폐기’ 절차로 진행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핵 담판에서 영변 핵폐기에 합의할 경우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영변의 5MW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등은 1994년 제네바합의와 2007년 2·13합의를 통해 동결과 가역적 수준의 불능화 조치를 거친 바 있다. 미국은 이번엔 우라늄 농축 시설 등 모든 영변 핵시설의 폐기 방안과 세밀한 검증 절차, 구체적 시한까지 도출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변 핵시설이 과거도 동결에 합의했다가 북한이 다시 재가동에 나섰던 만큼 얼마나 불가역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를 놓고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영변의 모든 핵시설을 신고·검증 등을 거쳐 폐기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소요되는 만큼 북한이 영변 핵시설들을 건건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 해체 및 폐기의 대가를 요구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며 비핵화 합의 효과를 반감시킬 가능성도 있다. 설령 하노이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향후 미국 등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검증과 사찰을 북한이 수용할지도 낙관하기 힘들다. 정부 소식통은 “수천억 원을 넘어 조 단위로 추산되는 핵시설 해체 및 폐기 비용과 고준위 방사성 물질 등 막대한 핵폐기물의 처리 문제 등 비핵화 종착점까지 짚고 갈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 “어차피 폐기할 시설” vs “비핵화 큰 진전”… 영변 핵폐기 싸고 논란

일각 “北, 핵개발 시설 분산배치”… “실질적 비핵화로 봐야” 반론도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미 정상이 하노이 담판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기 등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실질적인 비핵화로 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이미 6번의 핵실험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등가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실제로 영변 핵시설은 가동한 지 30여 년이 지난 노후시설로 어차피 폐기할 대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5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등 영변의 핵심 시설이 낡을 대로 낡아서 핵물질(플루토늄) 추출량도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었고, 사고 위험성도 높아 북한도 더 이상 운용하기 힘들다는 것.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영변이 미국의 집중 감시를 받자 다른 지역에 우라늄 농축시설 등 핵시설을 분산 설치해 영변 핵시설이 폐기돼도 북한의 핵개발 능력엔 별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2차 북핵 위기 이전까지는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80%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50% 미만으로 보고 있다. 데이비드 울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문제연구소(ISIS) 소장은 지난해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시설의 일부인 영변 핵폐기는 무의미하고, 북한 핵물질의 절반 이상이 비밀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명이 거의 다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는 ‘상징적 비핵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사실상 ‘버리는 패’로 활용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상응조치를 얻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결부터 폐쇄에 이르는 영변 핵폐기의 모든 과정을 최대한 잘게 쪼개어서 촘촘히 반대급부를 챙기려 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영변 핵폐기를 실질적 비핵화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핵연료의 생산 가공은 물론이고 농축·재처리시설까지 갖춘 영변 핵단지는 여전히 북한 핵개발의 산실이자 심장부인 만큼 이를 영구폐기하기로 합의한다면 북한의 핵능력은 상당 수준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핵개발도 일종의 연계산업이어서 영변 핵시설만 폐기해도 북한 핵개발 기반이 연쇄적으로 무너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영변 핵시설이 지금까지 파악된 핵무기급 플루토늄(PU)이 생산되는 유일한 곳이고, 2013년경에 기존보다 2배가량 규모를 증축한 우라늄 농축시설(원심분리기 4000여 개 설치 추정)도 운용 중인 점을 고려할 때 그 비중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다른 지역에 분산 배치했더라도 영변의 핵심적 지위는 견고하다”며 “핵물질 생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변 핵시설의 해체·폐기가 가시화된다면 비핵화의 큰 진전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북한#비핵화#영변#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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