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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구 주석-광복군 관인은 6·25때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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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구 주석-광복군 관인은 6·25때 행방불명

조종엽 기자 , 박효목 기자 입력 2019-01-21 03:00수정 2019-01-2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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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의정원 인장만 소재 확인
문희상 의장, 홍진 흉상건립案 추진… 작년 11월 국회 본회의 통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의 관인은 현재 소재가 확인된 임시정부의 유일한 국새다. 임정은 26년간 임시 헌장 제정과 5번의 개헌을 거치며 정체가 변화했지만 대체로 의회가 중심에 있었다. 1927년 3차 개정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최고 권력이 임시의정원에 있음”(제2조)을 명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환국 당시에는 주석제였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환국 당시 임정은 당·정·군의 형태였고 주석과 총사령관, 의정원 관인의 가치는 동렬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구 주석이 사용한 주석의 관인은 정부 문서와 함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됐다. 지청천 장군이 썼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의 관인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두 개의 관인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이번에 공개된 의정원 관인은 소재가 확인된 유일한 국새인 셈이다.

국회의 홍진 선생 흉상 건립 안건은 2003년 발의됐다가 제16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는 2010년 5월 ‘홍진 임시의정원 의장 기념전시실’을 국회도서관에 설치했으나 흉상 건립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한 교수는 “홍진 선생 손자 홍석주 씨가 흉상 건립과 관인 기증을 협의하러 한국에 7, 8번 왔을 때마다 만났다”며 “석주 씨가 ‘살아 있을 때 꼭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는데 끝내 생전에 결실을 못 봤다”고 설명했다. 홍 씨의 아내 신창휴 씨는 2017년 7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편하게 돌아가시지도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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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 후 홍진 선생 흉상 건립을 다시 추진했고 지난해 11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건립 안건이 마침내 통과(재석 의원 226명, 찬성 196명)됐다. 문 의장은 통과 직후 “홍진 의장님의 상(像)을 건립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가치를 보전하고 독립정신의 참뜻을 계승하는 숭고한 일”이라고 유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조종엽 jjj@donga.com·박효목 기자
#김구 주석-광복군 관인#6·25때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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