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나도 촛불 들었지만, 정권 바뀌어도 부당한 업무지시는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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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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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유서를 쓰고 잠적했다가 경찰에 발견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나는 왜 기획재정부를 그만두었는가-신재민’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총 3만2068자 분량으로 방대한 내용을 쓴 이 글은 Δ서문:글쓰기에 앞서 Δ2편 공무원의 역할 Δ3편 내가 기획재정부를 그만둔 두 번째 이유 Δ4편 부총리께 보고라는 소제목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이 글에서 신 전 사무관은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는 나도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며 "​정권이 바뀌고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부당한 업무지시는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똑같은 일은 반복 됐다"고 말했다.

특히 11월14일 바이백 취소 날 부총리에게 차관보가 심하게 질책을 당한 일화를 적으며 "부총리는 차관보에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국장이나 과장 입장에서는 국채 발행 안한다고 할 수 있어. 당연한 판단일 수 있단 말야. 그런데 당신은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니야? 1급까지 올라갔으면 역할을 해야지!'라고 질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놈의 정무적 고려, 나는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썼다.

이어 "부총리님은 왜 적자성 국채 발행 중단을 멈추면 안되는지 설명하셨다"며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정무적 고려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무적 고려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정권말로 이어지면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기에 그 때를 위해 자금을 최대한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것. 국채 발행 후 세계잉여금으로 비축하여 다음 다음연도 예산편성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두 번째는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둔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 였다​"며 "두 내용 모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국가재정법 상 불가능한 예산편성 방법이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국민을 기만하는 내용 같았다"고 적었다.

그는 "고위 공무원이 가져야 한다는 정무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정권이 유지되도록 기여 해야 한다는 것이 정무적 고려인 것인가?"라며 "행정법에 나오는 학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국가 무오류설. '국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우리는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원을 올린 뒤 지인에게 이튿날(3일) 오전 7시에 맞춰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가 경찰 수색 4시간여 만에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숙박업소에서 발견됐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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