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처벌 못했지만… “진실엔 공소시효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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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대구 여대생 성폭행 피의자’ 20년 만에 스리랑카 법정에 세우기까지


범인이 분명한데 눈앞에서 놔줘야 한다. 증거가 명백한데 처벌할 수 없다. 검사들로서는 치가 떨리는 상황이다.

1998년 일어난 대구 계명대생 정은희 양 성폭행 사망 사건에는 정 양과 유가족의 한(恨),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들의 투혼이 서려 있다. 한국에서 무죄가 확정된 스리랑카인 범인은 홀연히 고향으로 떠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국에서 안 된다면 스리랑카에서라도 한다.

최근 스리랑카까지 쫓아가 스리랑카 사상 처음으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스리랑카인을 자국 재판정에 세운 한국 검사들의 ‘지독한 추적기’를 소개한다.

○ 15년 만에 찾은 ‘그놈’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 30분경 남대구IC 인근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 대구 계명대 간호학과 신입생 정 양(당시 18세)이 갑자기 고속도로로 뛰쳐나오다 23t 화물트럭에 치여 숨졌다. 사고 현장 30m 인근에서 정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속옷이 발견됐다. 하지만 경찰은 두 달 만에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다.

유가족은 줄기차게 재수사를 요구했다. 1999년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가 유전자(DNA) 검사를 해보니 속옷은 정 양 것이 맞고 정액도 검출됐다. 성폭행 정황이 뚜렷했지만 비교할 시료가 없어 정액의 주인은 못 밝혔다. 정 양의 죽음은 그렇게 ‘영구 미제’로 잊혀지는 듯했다.

정 양의 아버지 정현조 씨(70)는 2013년 5월 31일 대구지검에 ‘딸을 성폭행하고 죽인 사람을 찾아 달라’며 고소장을 냈다. 사건의 공소시효(15년) 완성을 137일 앞둔 시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낸 것이었다. 사건은 당시 초임이었던 최정민 검사(37·사법연수원 37기·현 대전지검 형사2부 검사)에게 배당됐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던 최 검사는 국과수가 정 양 속옷에서 검출한 정액을 보관 중이란 걸 알게 됐고 확인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한국에 사는 스리랑카인 K 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K 씨가 2010년 11월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권했다가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고 DNA가 채취됐던 덕이었다. 1997년경 한국에 온 K 씨는 사건 현장 근처에 살고 있었다.

최 검사는 K 씨가 범인이라고 믿고 3개월간 내사를 벌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정 양의 지갑에는 학생증과 현금이 없었다. 정 양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려고 평소 현금을 들고 다녔다. 정 양이 사건 전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 3권도 사건 현장에는 없었다.

K 씨를 체포하려면 반드시 특수강도강간죄를 적용해야 했다. 정액이 발견된 만큼 강간죄는 입증이 쉽지만 공소시효(10년)가 이미 지났다. 공소시효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는 흉기를 들었거나 여러 명의 범인이 강도와 성폭행을 해야 성립한다. 최 검사는 K 씨가 흉기를 들고 정 양에게 책 3권과 학생증, 현금을 훔치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받아냈다. 체포한 피의자를 붙잡아둘 수 있는 48시간 안에 자백을 받겠다는 심산이었다.

○ 처음 드러난 ‘그놈’의 공범

“나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했다고 들었어요!”

검찰에 체포된 K 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다른 스리랑카인 D, B 씨의 이름을 댔다.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불법체류로 강제 추방돼 스리랑카로 돌아간 상태였다. 흥분한 K 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A 씨를 거론하며 “그가 나를 모함했느냐”고 소리쳤다. A 씨의 존재를 알게 된 최 검사는 그를 대구지검으로 불렀다. A 씨는 “나는 모르지만 동포 L 씨는 알 수도 있다”고 했다.

최 검사는 A 씨를 통해 L 씨와 통화하며 전율을 느꼈다. ‘K, D, B 씨가 술 취한 한국 여성을 자전거에 태워 사건 현장 근처의 굴다리 밑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는 얘기를 범인 중 한 명에게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구체적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K 씨가 구속된 후 또 희소식이 들렸다. A 씨가 스리랑카에 있는 공범 D 씨와 통화를 했는데 “K, B 씨와 한 공장 근처를 거닐다 전봇대 옆에 쓰러져있는 한국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를 자전거에 싣고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 검사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A 씨를 영상녹화실로 불러 D 씨와 다시 통화하게 했다. 하지만 최 검사가 등장하자 D 씨는 말을 바꿨다. K, B 씨가 한국 여성을 발견해 자전거에 태워간 것까지는 맞지만 나머지는 모른다고 했다. 최 검사는 40분간 수화기에 매달렸지만 끝내 진실을 듣지 못했다. D 씨는 20여 일 뒤 휴대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공소시효가 43일 남은 2013년 9월 3일, K 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최 검사는 1심이 진행되던 2013년 12월과 2014년 5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로 향했다. 공범 D, B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지 경찰이 진행한 두 차례 조사에서 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현지에선 수사권이 없는 최 검사는 분을 삼키며 돌아와야 했다.

대구지법 형사12부는 2014년 5월 30일 K 씨의 특수강도강간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성폭행을 했을 수는 있지만 강도를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최 검사는 스리랑카에서 귀국해 대구로 가던 버스 안에서 재판 결과를 전해 듣고 좌절했다. 최 검사는 2015년 2월 인사 발령이 나 대구지검을 떠났다.

○ 죗값 안 치르고 떠난 ‘그놈’

2심은 김진호 검사(42·36기·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검사)가 맡았다. 새로 부임한 이영렬 대구지검장(60·18기·전 서울중앙지검장)과 김영대 대구지검 1차장검사(55·22기·현 서울북부지검장)는 김 검사에게 “영구 미제로 남겨선 안 된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김 검사는 경찰과 공조해 1998년 이후 한국에 거주한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한 끝에 공범 D 씨로부터 사건 전말을 직접 들었다는 스리랑카인 ‘홍길동(가명)’을 찾아냈다. ‘홍길동’은 스리랑카 교민 사회에서 힘이 강한 K 씨를 두려워하는 증인을 보호하려고 검찰이 지어준 가명이다. 홍길동이 D 씨에게 들었다고 진술한 얘기는 이렇다.

“1998년 겨울 스리랑카인끼리 술을 마시던 중 D 씨와 밖에 나와 대화하다가 들었다. 당시 D 씨는 K, B 씨와 구멍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다 우연히 본 한국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자전거에 태우고 굴다리 밑으로 데려가 K, D, B 순으로 성폭행했다고 했다. B 씨가 성폭행할 때 K 씨가 여자 가방을 뒤지던 중 학생증을 보고 나이가 너무 어려 놀랐다고 했다. 그 틈에 여자가 굴다리 옆 고속도로로 몸을 피했는데 직후 차량 급제동 소리가 나 가방 속 물건을 들고 도망쳤다고 했다. 내가 안 믿자 D 씨는 지갑에서 여자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사진을 만져보니 뒷면이 어디선가 떼어낸 듯 까끌까끌했다.”

D 씨가 보여줬다는 증명사진은 정 양 학생증에서 떼어낸 것이라고 김 검사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K 씨가 정 양의 학생증을 훔쳤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고, 특수강도강간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대구고법 형사1부는 2015년 8월 11일 K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홍길동의 진술이 신빙성 없다고 판단했다. D 씨와 특별히 친하지 않아 보이는데 범행 수법을 구체적으로 말해줬다는 것 등이 의심스럽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2017년 7월 18일 무죄를 확정했다. 충북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지냈던 K 씨는 무죄가 확정된 지 8일 만에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19년 동안 풀지 못한 정 양의 한(恨)도, 4년에 걸친 대구지검 검사들의 분투(奮鬪)도 그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 ‘한국이 아니면 스리랑카에서라도!’

정액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K 씨를 처벌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던 김영대 검사장은 2017년 8월 ‘스리랑카 공조수사 전담팀’을 꾸렸다. 스리랑카에선 살인·반역을 제외한 모든 죄의 공소시효가 20년이라 현지에선 K 씨를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담팀은 최 검사와 김 검사, 스리랑카와의 공조를 전담할 법무부 국제형사과 김형원 검사(40·36기), 대구지검 홍민유 검사(40·변호사시험 1회) 등 9명으로 꾸려졌다. 스리랑카는 한국과 형사사법공조 조약을 맺지 않았다. 김형원 검사가 2017년 11월 스리랑카 대검찰청을 찾아가 협조를 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2018년 5월, 스리랑카 공소시효 완성을 5개월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김 검사장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스리랑카 검찰이 전담팀을 만나보겠다는 것이었다. 김 검사장을 필두로 최정민 김형원 홍민유 검사, 부검 전문가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 DNA 전문가 이승환 대검 법과학연구소장 등 6명이 콜롬보로 향했다.

스리랑카 대검찰청에서 만난 자얀타 자야수리야 검찰총장은 증거가 부족해 K 씨의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스리랑카 검찰은 자국민이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를 자국에서 처벌한 전례가 없기에 더욱 방어적이었다. 김 검사장은 3시간동안 논쟁을 벌이며 ‘한국에 사람을 보내 직접 사건을 조사해보라’고 호소했다. 주말에 주스리랑카 한국대사관에서 사건 주임검사를 만나 또 설득했다.

전담팀의 간절함은 인도양의 섬나라를 움직였다. 스리랑카는 7월 30일 범죄수사국(CID) 국장과 수사관 2명을 한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사건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직접 봤다. 서울의 주한 스리랑카대사관에서 L 씨와 홍길동 등 핵심 증인과 정 양 최초 부검의, 최초 출동 경찰 등 33명을 조사했다.

마침내 스리랑카 검찰은 12일 K 씨를 성추행(Sexual harassment) 혐의로 스리랑카 콜롬보고등법원에 기소했다. 스리랑카 공소시효가 끝나기 4일 전이었다. 다만 강간이나 강제추행 대신 정 양 속옷에 묻은 정액만으로도 포괄적으로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성추행죄를 택했다. K 씨는 유죄 판결이 나면 징역 2∼5년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추행죄는 징역 5년 이하에 처하는 범죄이고, 징역 2년 이상만 선고하는 고등법원에 기소됐기 때문이다.

○ 지독한 검사들, 최후의 승자 될까

김 검사장은 24일 사건 소회를 묻는 기자에게 “전담팀에 미안하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이미 관할인 대구지검을 떠난 검사들에게 빛이 덜 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사건에 고된 일을 시켰다는 미안함이었다. 그는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진실을 스리랑카에서라도 꼭 밝히고 싶었다. 작은 성취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 검사는 “기적이 기적을 만나 여기까지 왔다”고 회상했다. 정 양 아버지의 고소장만으로 시작해 K 씨를 체포하고 10여 년 지난 사건을 기억하는 L 씨와 홍길동을 찾아냈던 일, 한국에서 무죄가 확정된 K 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가 기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어려웠다.

최 검사는 2015년 대구지검을 떠난 뒤에도 정 양 사건을 병행했다. ‘정 양의 영혼이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밤늦게 불 꺼진 청사를 홀로 나서도 겁이 안 났다고 했다. 하지만 주임검사로서 눈앞의 범인을 한국에서 단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그를 괴롭힌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은희와 유가족에게 너무 죄송하다. ‘당시 내가 초임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담팀엔 최후의 임무가 남았다. 한국에 있는 참고인 33명이 스리랑카 법정에서 진술하도록 도와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증언은 한국에서 화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지독하게 이 사건을 쫓아온 한국 검사들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K 씨의 재판은 이르면 1년 안에 결론이 날 전망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스리랑카#범죄#공소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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