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J 도전한 백발의 청춘… “할매 먹방 한번 보시겠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문화원연합회 ‘문화로 청춘’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

‘할프리카 TV’ 취재에 나선 이천 할머니들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카메라에 담고 청년들과 함께 제작한 동영상(위쪽 사진).
 ‘마을라디오 별이 빛나는 고양 FM’ 제작에 참여한 노인들이 녹음장비 취급과 인터넷 업로드 방법을 익히고 있다. 블랙래빗 87 
제공·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할프리카 TV’ 취재에 나선 이천 할머니들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카메라에 담고 청년들과 함께 제작한 동영상(위쪽 사진). ‘마을라디오 별이 빛나는 고양 FM’ 제작에 참여한 노인들이 녹음장비 취급과 인터넷 업로드 방법을 익히고 있다. 블랙래빗 87 제공·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21일 오후 경기 이천시 남곡농원. 초로의 마을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올해 4월부터 영상 제작을 진행해 온 경기 이천문화원의 ‘할프리카 TV’ 프로그램 열여섯 번째 날이었다. 할머니들은 서넛씩 무리를 지어 앉았고, 카메라에 빨간 녹화 신호가 들어왔다. 이날은 날씨 때문에 마을 취재를 나가지 않고 각자의 옛 추억을 말하며 녹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질 수 없다 싶어 지붕에서 홀딱 뛰어내렸지. 그런데 어린 조카가 못 뛰고 울상을 짓고 있는 거야. 야, 너도 뛰어내려 했더니 마지못해 뛰는데 빨랫줄에 그만 턱이 걸렸어. 그러고는 뒤로 떨어져서 기절을 한 거야.”

폭소가 터졌다. “너무 오래 웃었어. 끊고 갑시다.” 잠시 ‘티타임’이 이어지는 동안 할머니들은 영상을 재생해 보며 다시 한번 웃음꽃을 피웠다. “너무 가깝게 찍은 거 아냐?” “아냐. 더 멀리 가면 누군지 몰라.”

할프리카 TV는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올해 실시하는 ‘문화로 청춘’ 프로그램 299개 사업 중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 12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노인들이 TV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비슷한 1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

청년 문화기획 모임 ‘이제이팩토리’ 소속 청년들의 협력으로 기획안 만들기, 카메라 작동법, 촬영 기술까지 익혔다. 지금까지 맛집 방문이나 자신들의 요리 모습을 담은 ‘쿡방, 먹방’ 등의 영상물을 제작했고 유튜브에 영상들을 공유하고 있다. 9월 중에는 이천의 문화축제인 ‘설봉문화제’를 찾아 축제 모습도 담아낼 예정이다.

“어르신들과 뭔가 콘텐츠를 만든 일이 없어 처음엔 어색했죠. 그러나 처음부터 할머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 젊은 세대와 함께 작업하는 걸 즐거워하셨어요.”

이제이팩토리의 할프리카 TV 제작을 지원하는 ‘블랙래빗 87’ 한도영 대표는 “영상 기술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세대 간에 거리를 줄여나가는 데도 의미가 큰 시간”이라고 말했다.

팀에서 ‘BJ 런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점심 씨(65)는 “나이 든 사람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도 방법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몰랐던 것을 알아가게 되니 빠져든다. 곳곳을 화면에 담으면서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24일 오후 고양문화원의 ‘마을라디오 별이 빛나는 고양 FM’ 제작이 한창인 경기 고양시 원당행복학습관을 찾았다. 동영상을 제작하는 할프리카 TV와 달리 이곳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15명을 4개 조로 나누어 한 조는 지난주 완성된 프로그램을 발표한 뒤 다음 프로그램 기획을 논의하고, 두 조는 취재를 나가고, 다른 한 조는 취재해 온 음성을 청년 문화단체 ‘더불어꿈’과 함께 편집해 본다.

이날 발표된 완성 프로그램은 ‘오늘도 좋은 날’ 팀이 제작한 ‘여름의 기억들’. 젊은 시절 참외를 찬물에 담가 먹던 기억, 위험한 저수지에 멱 감으러 갔다가 어른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발발 떨며 벌서던 기억, 원두막에서의 애틋한 첫사랑의 추억 등이 스피커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자리에 모인 노인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 밖에 광주 서구에서는 청년 문화단체 ‘프랜리’가 발산마을에서 ‘할배할멈뉴스데스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을 지켜온 노인들이 마을 기자단이 되어 자신들이 발굴한 소식을 기사로 적고 사진을 곁들인 마을 소식지로 제작하며 영상도 만들어 다른 마을과 공유할 계획이다. 대전 대덕문화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비바 대덕청춘방송국’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주간기관인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유튜브나 SNS 등의 활동에 늦어지는 노인층이 사회적인 소통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다”며 “청년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영상이나 팟캐스트용 콘텐츠를 생산해 노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며, 사회적인 성취감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전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올해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일환으로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 외에 어르신 문화예술 교육 지원, 어르신 문화예술 동아리 지원, 야외공연 ‘찾아가는 문화로 청춘’ 등의 사업을 실시한다. ‘어르신&청년 협력프로젝트’로는 콘텐츠 제작 외에 꽃 예술 창작을 통해 공동체의 소통을 꾀하는 경기 군포시의 ‘꽃소동 화훼×화해’, 충북 옥천군의 ‘어르신 자서전 발간 사업’ 등이 펼쳐진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할프리카 tv#한국문화연합회#문화로 청춘#이제이팩토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