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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파워기업]2010년 1인 기업으로 창업… 국내 최고 ‘생체재료 전문기업’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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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파워기업]2010년 1인 기업으로 창업… 국내 최고 ‘생체재료 전문기업’ 도전장

조용휘 기자 입력 2018-06-18 03:00수정 2019-04-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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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메드파크
지난해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치과학술대회 및 기자재전시회인 ‘예스덱스’에 참가한 생체재료 및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메드파크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메드파크 제공

“5년 안에 회사를 상장시켜 아시아 제일 기업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생체재료 및 의료기기 제조기업 ㈜메드파크 박정복 대표(41)의 목표다.

메드파크는 2015년 부산 북구 낙동대로에 6층짜리 본사 건물을 지었다. 해외 바이어는 물론 직원들에게 회사 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창업 기업으로는 드문 사례다. 최근 이 건물 회의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생체재료 제조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회사를 소개했다.

메드파크는 2010년 박 대표가 1인 기업으로 세웠다. 인제대 창업보육센터에 사무실을 뒀다. 직원 35명에 연매출 20억 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뿌리내리기까지 흘린 박 대표의 땀과 눈물은 엄청나다.


인제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박 대표는 4학년 때인 2003년 KOTRA 인턴으로 스웨덴에서 1년간 근무했다. 전문경영인이 꿈이던 그에게 이 기간은 비즈니스 세계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었다. 이듬해 170개국에 수출 라인을 가진 넥센타이어에 입사했다. 그는 넥센 해외영업부에서 일하게 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던 사무실 주변이 그의 생활 근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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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그의 미래가 보였다. 선천적으로 이가 좋지 않던 그는 치과를 자주 찾았다. 치아를 치료받으면서 당시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한 임플란트에 숨은 부가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서서히 임플란트에 미쳐갔다.

2년간 관련 지식을 습득한 박대표는 2007년 해외영업을 준비하던 임플란트 업체 디오에 입사했다. 해외시장을 오가며 실무를 접하고 틈나는 대로 이론도 연구해 실력을 쌓았다. 그는 2010년 창업을 결심하고 사표를 썼다. 그를 인정하던 회사도 기꺼이 응원해줬다. 그해 8월 메디파크를 만들었다.

그는 임플란트 구성 부품 가운데 인공치아와 인공뿌리를 연결하는 부품인 어버트먼트(abutment·지대주)를 특화 생산했다. 경쟁력이 큰 부품이었다. 주문이 밀려들어 혼자서는 도저히 소화하지 못해 직원 3명을 채용해 밤낮없이 생산했다. 2012년에는 중국시장에 진출해 타이위안(太原)에 사무소를 열었다. 2015년엔 칭다오(靑島)에 법인도 설립했다. 동시에 중국 의료기기 경영허가증 1, 2, 3종을 취득했다. 2013년 수출 100만 달러 달성 한국무역협회 표창도 받았다.

박 대표는 해외에서 임플란트와 연관된 생체재료 수요가 폭증하는 것을 실감했다. 2016년 신사옥으로 회사를 옮기고 전담인력 15명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서는 이종(異種)골이식재를 개발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4등급 허가를 받았다. 돼지껍질을 이용한 콜라겐 추출 기술도 개발했다. 조만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이종골이식재 인증도 받을 예정이다.

박 대표는 “메드파크는 임플란트 장비와 골이식재, 의료용 콜라겐, 생체소재 등 4개 사업모체에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13개 분야, 제품 아이템 100개 이상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는 사상구 모라동 부산벤처타워에 연구개발(R&D)센터가 입주한다. 2021년경에는 양산이나 부산 해운대 센텀2지구에 생산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지면 메디파크는 생체재료 대표 전문기업으로 우뚝 설 것으로 보인다. 김홍윤 기획부 과장(36)은 “우리 회사는 젊고 액티브하다. 거칠기도 하지만 앞만 보고 한길을 간다. 직원들은 메디파크가 평생직장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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