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죽음 부른 ‘가족 생이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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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하게 닫힌 국경… 反이민정책의 비극


미국 국경을 넘다 붙잡힌 온두라스 출신 30대 남성이 구금시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남성은 함께 국경을 넘었던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에 따라 자신과 격리되면서 생이별을 하게 되자 이 같은 선택을 했다. 취임 이후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해 온 트럼프 행정부는 18세 이하 미성년 자녀와 함께 밀입국하다 적발될 경우 부모는 처벌하고 자녀는 격리한다. 이른바 ‘무관용 정책’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0일(현지 시간) 텍사스주 스타 카운티의 구금시설에 갇혀 있던 온두라스 출신 마르코 안토니오 무노스(39·사진)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무노스는 지난달 아내,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멕시코에서 리오그란데강을 건너 텍사스주 국경 마을 그랜저노로 넘어왔다.

그는 이곳에서 망명이나 난민 지위를 신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은 지 이틀 만에 세관국경보호국(CBP) 단속 요원에게 붙잡혔다. 무노스는 구금시설로 압송되면서 아내, 어린 아들과 떨어지게 됐다. 구금시설에 갇힌 무노스는 가족을 찾아달라고 애원하며 난동을 부리다 독방에 갇힌 뒤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제프 세션스 미 법무장관은 4월 연방검사들에게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을 넘다 체포되는 불법 이민자들을 ‘실행 가능한 최대한도로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6일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에도 밀입국 시도는 오히려 늘었다”며 “정책의 가혹함에 비해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NYT에 따르면 5월 미 연방수사국(FBI)은 남서부 국경에서 불법 이민 혐의로 5만2000명을 체포했다. 3개월 연속 증가세다. 미국 인터넷매체 VOX에 따르면 2017년 6월부터 11월까지 불법 이민자 가족 수도 231가족에서 379가족으로 64% 증가했다. 취임 초기부터 반이민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책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이민 정책에 대한 미국 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비판은 거세다. 밀입국 미성년 아동 1500명의 소재를 미 보건복지부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4월에 알려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미국 국민들은 트위터에 ‘#WhereAreTheChildrens(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은 “단지 연락이 닿지 않을 뿐 이들 중 대다수가 미국에 와 있는 가족들과 재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엔도 나섰다. 라비나 샴다사니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대변인은 5일 “부모와 아이들을 격리하는 것은 심각한 어린이 인권침해”라며 밀입국 가족의 어린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하는 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거센 비판 여론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백인 노동자 지지층을 탄탄하게 다질 방책이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6년 대선에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계산법을 되풀이해 이번 선거에서도 승기를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반이민 정책을 이슈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백인 블루칼라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트럼프#반이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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