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탈출했다가 교통사고 당한 반달가슴곰 KM-53 수술 현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0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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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지 2주가 지나 근육이 수축됐고 조직도 변성됐다. 쉽지 않은 수술이 될 것이다.”

17일 낮 12시 전남 구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내 야생동물의료센터 직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센터와 함께 수술을 집도하는 강성수 전남대 수의외과 교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송차량 들것에는 세 살배기 수컷 반달가슴곰인 ‘KM-53’이 누워있었다. 지난해 지리산을 2번이나 탈출해 100km 떨어진 김천 수도산까지 간 그 반달곰이다.

곰의 개척자란 의미에서 ‘반달가슴곰계의 콜럼버스’로 불리는 KM-53은 한눈에도 야윈 모습이 역력했다. 사고를 당한 왼쪽 앞발은 위로 꺾인 채 퉁퉁 부어있었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에요.” 정동혁 센터장이 말했다.

다 자란 야생 반달가슴곰의 복합골절수술은 세계 최초다. KM-53은 이달 5일 세 번째로 지리산을 탈출했다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던 관광버스에 치여 왼쪽 앞발 상완골(어깨~팔꿈치 구간)이 산산조각 났다. 수술은 한나절 넘게 진행됐다. 흩어진 뼛조각을 맞추고 근육과 다른 조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친 정 센터장은 “한 달 이상 경과를 지켜본 뒤 재방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방사 시 KM-53이 다시 수도산 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두 번이나 지리산으로 보냈지만 탈출했고, 이동경로도 매번 비슷했기 때문이다. 종복원기술원과 함께 곰의 생태를 연구해온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곰은 만 2세 청년이 되면 영역 확보에 나서는데, KM-53는 지리산 내 영역다툼에서 밀려 수도산까지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곳에서 동굴 등 맘에 드는 서식환경을 발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KM-53뿐 아니라 반달곰들의 ‘엑소더스’가 광범위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술원에 따르면 5월 현재 만 2세 이하 곰은 20마리로 이 중 수컷이 9마리, 암컷이 2마리, 미확인개체가 9마리다. 현재 청년기인 만 3~5세 수컷도 10마리에 이른다. 수컷은 암컷보다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하려는 속성이 있다. 현재 지리산에 사는 반달가슴곰은 56마리로 수용가능 개체수(78마리)에는 못 미치지만 밀집 정도에 따라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구역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곰들의 잇단 타출은 시간문제란 얘기다.

지난해 두 살 수컷곰 KM-55가 지리산을 탈출해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겨울을 났다. 지리산 밖에서 동면한 건 반달곰을 방사한 이후 처음이다. 이 곰은 최근 인근 양봉농가의 벌통을 부수고 꿀을 훔쳐 달아났다.

기술원은 곰의 탈출경로를 크게 3군데로 보고 무인센서 설치를 건의하기로 했다. 지리산 북쪽 덕유산, 남쪽 백운산 방향 등이다. 하지만 센서 설치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환경부는 23일 경북 김천에서 지리산 인근 광역·기초지자체, 시민단체와 함께 회의를 연다.

구례=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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