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한올 한올 붙여… 더 강렬한 탄광촌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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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화가’ 황재형 이색 전시회
“박수근賞 1회 수상자 무게 때문에 물감 대신 머리카락으로 도전… 처음엔 딸 머리카락으로 시작, 이후엔 이웃-미장원서 얻어 눈 실핏줄 터져가며 작업”

11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화가 황재형이 수십만 개의 머리카락으로 작업한 자신의 작품 ‘드러난 얼굴’ 앞에 섰다. 작은 사진은 그의 머리카락 작품 ‘볕바라기’(오른쪽 위)와 ‘아직도 가야 할 땅이 남아있는지’.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1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화가 황재형이 수십만 개의 머리카락으로 작업한 자신의 작품 ‘드러난 얼굴’ 앞에 섰다. 작은 사진은 그의 머리카락 작품 ‘볕바라기’(오른쪽 위)와 ‘아직도 가야 할 땅이 남아있는지’.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어휴, 바로 그 박수근 미술상의 무게 때문에 이렇게 머리카락으로 도전하게 됐어요.”

11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본 ‘황재형 개인전―십만 개의 머리카락’(내년 1월 28일까지)은 충격이었다. 간단한 스케치만 한 후 사람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붙여 대작들을 완성한 것이다. 유화 물감이 아닌 머리카락이 이렇게 강렬하고 생생한 표현력을 가질 수 있다니….

지난해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등이 제정한 ‘제1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 후 작품 활동의 변화를 묻자 황재형(65)은 말했다. “박수근 화백(1914∼1965)은 경주 남산의 석불을 보고 점을 콩콩 찍어 화강암 같은 질감으로 국민정서를 드러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상을 칭송하고 자유를 얘기할 때 박수근은 그렇게 도전한 거죠. 난 그분의 상을 받았는데 뭘 하고 있나 싶어 머리카락을 택했습니다.”

옆에 있던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도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시대에 이렇게 새로운 시도, 새로운 예술을 하는 작가분이 있는 게 소중하니까요.”

중앙대 회화과를 나온 황재형은 1983년부터 강원 태백시에 거주하며 탄광촌 사람들의 치열한 일상을 화폭에 담아와 ‘탄광촌 화가’로 불린다. 처음엔 물감 살 돈이 없어 석탄과 흙을 개어 그림을 그렸는데도 ‘한국 사실주의 미술의 최고봉’이란 평을 받았다. 그가 7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 ‘힘들어 눈의 실핏줄이 터져가며’ 작업한 머리카락엔 사연이 많다.

“난 직선을 그리고 싶어도 이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가요. 나의 즉흥성을 이 머리카락이 주저앉혀요. 즉흥적으로 그리면 개인의 감성은 잘 드러나지만, 소통의 한계에 봉착하거든요. 예술은 소통하는 것이에요. 2년 넘게 머리카락 작업을 하면서 그걸 되새겼어요.”

한 작품에 족히 석 달은 걸리는, 유화보다 세 배는 힘들다는 머리카락 그림. 그는 ‘황재형식 모발론(毛髮論)’을 펼쳤다. “사람 머리카락의 평균 개수가 10만 개예요. 머리카락은 ‘최초이자 최후의 인간의 옷’이란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징표, 귀하게 여겨야 하는 생명력이에요. 머리카락 성분을 보면 우리가 뭘 먹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가 다 드러난답니다. 아세요? 젊은 사람일수록 머리카락이 건강해요.”

그는 처음엔 딸의 머리카락으로 작업했고, 이후엔 이웃과 미장원들에서 얻었다. “(그림으로) 잘해 주세요”라고 건넸던 자신들의 머리카락이 작품으로 완성된 것을 보고 탄광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놀라면서도 기뻐하죠. 아직 태백 사람들은 자본화되어 있지 않거든요.”

물난리로 탄광촌이 뒤덮인 날 서성이는 주민들, 갱도 앞에서 쉬고 있는 광부들…. 그의 그림들은 이웃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표현한 ‘삶의 역사현장’이다.

그렇다면 본인의 머리카락도 작품에 사용했을까. 그는 모자를 벗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 모르셨구나. 머리카락 많은 분이 정말 부러워요.(웃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황재형 개인전#황재현#탄광촌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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