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권용수]블라인드 채용, 평가방식과 절차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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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권용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 한 단면을 희화화했던 영화 ‘친구’의 이 대사가 나온 지 1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금수저’ 논란과 스펙 전쟁에 청춘을 소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스펙 대결에서 뒤처진 ‘흙수저’들을 능력 미달자로 치부하는 악순환을 끊고 외모와 학력이 아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했다. 물론 그만큼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출신 지역, 연령, 성별, 학력 등의 차별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능력 중심의 공정사회 실현을 기대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력, 어학능력 등 지원자의 정보들을 배제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다양한 논란이 있지만 실력에 따라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출신 배경, 지위 등을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이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는 미국 철학자 롤스의 생각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실력을 평가해 가려낼 것인가이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개인의 신상 정보나 학력같이 ‘보지 않아야 할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봐야 할 것’은 제대로 반영하여 인재를 확보하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블라인드 채용이 가능할까. 공무원 공채시험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2005년부터 공채 시험 원서에 학력이나 가족사항 기재란을 없앴다. 면접위원에게는 지원자의 출신 학교·지역 같은 신상 정보는 물론이고 필기시험 성적도 제공하지 않는다. 모든 응시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에서는 응시자가 보여주는 역량 수준에 따라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필자가 수차례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공무원 면접시험 경험을 떠올려 판단컨대 블라인드로 면접을 하더라도 집단심화토의, 개인발표, 상황면접 등 다양한 기법 속에서 수험생의 역량과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면접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블라인드로 진짜 인재를 가려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한 블라인드 채용이 자칫 ‘깜깜이 채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보다는 인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정교한 채용도구와 방법에 대한 논의로 발전해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수많은 지원자 중 옥석을 가려내는 역할을 스펙이력서가 아닌 공정하고 타당성 있는 채용 시험이 대신하는 것이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어떤 방식과 절차로 어떤 내용을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공공기관 및 민간 부문과 공유해야 한다.

권용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블라인드 채용#스펙 대결#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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