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마저 싸늘… ‘외톨이’ 리용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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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고강도 대북제재 채택]왕이 만나 “中과 소통 유지 원해”… 대북 제재 동참에 불만 드러내
北측 “南과 만날 계획 없습네다”

‘고립무원(孤立無援).’

북한의 올해 상황은 지난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보다 훨씬 외롭고 고독하다. 연출 논란이 있었어도 라오스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숙소에 머무는 등 친밀함이라도 과시했었다. 하지만 올해 필리핀 마닐라 ARF에선 중국 등 믿었던 아군마저 유엔 새 대북제재 결의안에 도장을 찍은 채 마주해야만 했다. 잇따른 도발로 북한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6일 오전 마닐라에 도착한 리 외무상을 공항에서 맞이하는 인원은 단출했다. 필리핀은 라오스와 달리 북한대사관이 없다. 취재진의 눈을 피해 VIP 통로로 나온 리 외무상은 현지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숙소인 뉴월드 마닐라베이 호텔에 도착해서야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 외무상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움직였고 그를 보좌한 방광혁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 부국장이 대변인을 자처하며 남북 외교장관회담 가능성에 대해 “만날 계획 없습네다”라고 답했다. 리 외무상은 북한 입장 발표 시기와 방향을 묻는 질문에 “기다리라”고만 했다.

북-중 외교장관회담은 이날 오후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됐다. 리 외무상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지금 중국과 소통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에 대한 ‘SOS’ 요청이자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왕 부장은 리 외무상에게 “한반도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해 북-중관계 역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연쇄 도발로 중국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리 외무상이 이번 회의에 참석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회원국들이 말하는지 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견 교류는 매우 의미 있다. 북한이 마지막엔 올바르고 지혜로운 결단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이날 오후 열린 환영만찬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주로 정면을 응시했다. 리 외무상은 당초 중국과 캄보디아 외교장관 사이에 앉기로 돼 있었으나 정작 스위스와 우호국인 캄보디아 사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리 외무상과 21칸 떨어진 곳에 앉았다. 험난한 남북관계만큼이나 먼 거리였다. 아세안 외교장관들까지 작심하고 대(對)북한 성명을 낸 가운데 리 외무상은 다른 외교장관과 어울리지 못해 유령 노릇을 했던 ‘라오스 비엔티안 왕따’의 악몽을 또다시 경험할 처지에 놓였다.

마닐라=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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