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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운 차별 ‘외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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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운 차별 ‘외퀴’를 아십니까

권기범기자 입력 2017-06-13 03:00수정 2017-06-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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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세계화… 외국인 인종차별-배척 풍조 만연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해외 팬들 너무하네. 이러니까 ‘외퀴’ 소리를 듣지….”

10일 오후 서울의 한 경기장에서 열린 아이돌 가수 공연장에 들어가던 학생이 화가 난 듯 중얼거렸다. 일부 외국인 팬이 빨리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옆 사람을 밀어붙이는 듯한 행동을 하자 이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 외국인 관광객은 ‘바퀴벌레?’

10, 2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외퀴’라는 말은 ‘외국인 팬’과 ‘바퀴벌레’를 합친 말이다. 원래는 특정 아이돌 그룹의 극성팬을 비난하던 말이 외국인 팬을 비하하는 말로 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에 민폐를 끼치는 외국인’을 싸잡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그뿐만 아니다. 일부 극우 성향의 누리꾼은 파키스탄인을 ‘파키벌레’나 ‘바퀴스탄’으로 비하해 부르거나 베트남인을 ‘트남이’(베트남인에서 ‘베’를 뺀 것’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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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케이팝 팬들이 모여 있는 웹사이트에는 “한국인들이 내게 ‘외퀴 주제에’라고 하는데 무슨 뜻이냐”는 질문이 여럿 올라와 있다. 이들은 뜻을 알고 난 뒤 “너무 공격적이다” “인종차별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특정 유행어를 쓰진 않지만 기성세대의 인종차별 발언도 여전하다. 3월 말 부산에 사는 콜롬비아 출신의 남성 M 씨가 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 대형마트에서 한국인 남성과 시비가 붙었는데, 이 남성이 M 씨에게 “폴란드 ××(폴란드인으로 오해)” “폴란드보다도 못 사는 콜롬비아 ××”라고 말했다는 것. 항의하는 M 씨에게 경찰마저 “‘깜둥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인종차별이냐”고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온라인에서 큰 논란이 됐다. 이후 경찰이 사과하면서 논란은 끝났지만 M 씨는 “한국에서는 참견도 하지 말고 엮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대로”라는 반응이다.

직장인 권모 씨(33)도 지난달 중순 경기 수원시의 한 상점에서 계산을 하려다 깜짝 놀랐다. 외국인 여성 2명이 줄을 무시하고 계산대로 향하자 뒤에 있던 한 30대 여성이 “똥남아×들은 짜증나게 줄을 설 줄 모른다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권 씨는 “그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온지 알 수도 없었다”며 “목소리가 제법 커서 분명히 들었을 텐데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교수나 강사가 유학생에게 이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 한 사립대에서 강사 김모 씨는 중국인 학생을 향해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놈”이라고 소리쳤다가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서울시립대 교수가 ‘검둥이’ ‘흰둥이’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써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정직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사이트는 더 적나라하다. 소셜미디어 여론 진단 사이트인 소셜메트릭스에 따르면 ‘외퀴’의 경우 ‘괴롭다’ ‘미쳤다’ ‘도움이 안 된다’ ‘욕먹다’ 같은 감정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똥남아’라는 단어는 ‘멍청하다’ ‘더럽다’로 통했다. 실제로 트위터에서 해당 단어를 검색하면 “외퀴는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다 싫다”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 “다문화 의식 후퇴 우려”

이 같은 외국인 비하 표현은 한국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까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중국인 팅팅(정정·23·여) 씨는 “중국인을 음식에 비유하는 욕이 있다는 건 이제 잘 알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에서 돈을 쓰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서울에 사는 외국인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서울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라고 답한 사람들(5.7%)은 ‘사회적 개방 및 포용이 미흡’(25.5%)하고 ‘(외국인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차별한다’(20.4%)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인식이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다문화가정 증가가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20대의 35.1%가 동의해 30∼50대(30.0∼31.8%)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2014년 아산정책연구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전 수준이 낮은 국가를 낮게 평가하는 우리 안의 ‘위계화된 인종 서열’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라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는 향후 정치·경제적으로 협력해야 할 지역인 만큼 정부와 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외퀴#인종차별#외국인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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