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中 관계, 동상이몽 된지 오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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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선즈화 교수 논문서 주장

“외교 전략 차원에서 중국과 북한은 정치적 일치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양국 관계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된 지 오래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교수(사진)가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학술지에 최근 기고한 논문 ‘북중 불신의 역사적 뿌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6·25전쟁과 중소(中蘇) 관계, 한중 관계를 연구해온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논문은 10일 발간되는 ‘성균차이나브리프’ 4월호에 게재된다.

앞서 그는 지난달 19일 다롄(大連)외국어대 강연에서 “사드 보복은 한국의 국민 여론을 돌아서게 해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밀어넣고 있다”며 “나는 중국의 사드 대응에 매우 반감을 갖고 있다”고 공개 비판해 주목받았다. 정부 방침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중국 학계에서 사드 보복을 비판한 학자는 지금껏 선 교수와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이 전부다.


선 교수는 이 논문에서 6·25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의 미묘한 관계를 집중 분석했다. 기존 북-중 관계가 일반적인 국제관계와 달리 사회주의 시스템 특유의 ‘당 대 당’ 혹은 수뇌부 간 교류에 크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6·25전쟁 내내 양국 수뇌부가 불협화음 속에 있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전쟁 발발 직후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전시작전권 요구에 대해 김일성은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다. 이후에도 김일성은 38선을 뚫고 계속 남진할 것을 촉구했지만, 마오쩌둥은 “진격을 멈추고 휴식을 가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선 교수는 “전쟁 기간 ‘입술과 이와 같은’ 우호관계 뒤로 양국 지도부의 끊임없는 갈등이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냉전과 개혁개방 시기에도 양국에서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종전 직후 독재체제 구축에 나선 김일성은 중국의 지지를 받던 연안파 세력을 대거 숙청했다. 이어 1960년대 중소 분쟁이 격화되자, 북한은 친중(親中)과 친소(親蘇)를 오가며 실리를 추구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서방의 제재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이 단행한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특히 선 교수는 마오쩌둥과 김일성 갈등의 원인을 대립적인 사상에서 찾고 있다. 중국 고대 사서에 심취했던 마오쩌둥은 대북 관계에서 중국 제왕들의 천조(天朝·천자의 조정) 의식을 투영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후국이 천조를 섬기듯,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자신의 정치 노선에 복종하기를 원했다. 이는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이른바 주체사상을 내세운 김일성의 외교 이념과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는 분석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마오쩌둥#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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