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밀어주기 승부조작이 대접 못받는 세상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3월 29일 05시 45분


프로야구 초기 노골적 져주기게임
도루왕 등극 위해 친분관계 이용도
2010년 자정 노력 통해 개인상 박탈


‘밀어주기’의 뜻은?

밀어주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사람이나 동물, 기관 따위가 다른 사람이나 동물, 기관 따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다’로 돼 있다. 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특정한 지위에 선출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사전적으로는 뭔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생활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될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밀어주기’를 넣어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는 놀라웠다. ‘구의회 의장직 선출 과정에서 특정 후보자를 밀어주기 위해 담합한 혐의로 구의원들이 무더기로 입건됐다’, ‘시내버스 안전평가에서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평가 기준을 변경한 의혹이 제기됐다’, ‘대기업 영화관들이 예매일을 앞당기며 자사 영화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적자를 보면서 길거리 점포사업을 진행했다’는 내용들이었다. 온통 부정적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 스포츠에도 ‘밀어주기’가 있을까?

프로야구 초창기의 일이다. 당시에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리그를 나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그런데 어느 해 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전력이 좀 약한 팀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후기리그 막바지 전력이 좀 약한 팀과의 경기에서 플라이볼 잡지 않기, 일부러 주루사 하기, 잘하고 있는 선수 교체하기 등의 방법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져주기 게임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도루왕 경쟁이 치열하던 시즌 막바지, A선수의 도루왕 등극을 우려하던 선수들이 B선수에게 출루를 많이 내줬다. 도루 기회 자체를 많이 주려고 했던 것이다. 또 A선수와 친한 C투수는 시즌 중 A선수가 출루하면 유난히 투구폼을 크게 해 A선수의 도루를 도왔다는 의혹을 샀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스포츠윤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어느 종목에나 있었던 일이다.

이런 사례들은 ‘정정당당’이라는 스포츠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지금이라면 모두 ‘승부조작’으로 처벌받았을 수도 있다. 다만 당시에는 이런 조작행위들이 불법적인 스포츠도박과 연결되지 않아 사법적 처벌 대신 여론의 처벌에만 그쳤다. 더불어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선 2010년부터 밀어주기로 따낸 개인상은 시상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자정 노력 덕분인지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개인상을 밀어주는 일이 없어졌다.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 아름다운 ‘밀어주기’도 있을까?

프로리그 막판에는 매 시즌 개인상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신인왕은 평생 한 번뿐인 영광이어서 감독이 소속 선수의 수상을 위해 투표권자인 기자들에게 ‘우리 선수를 밀어달라’고 호소한다. 아울러 개인성적을 올리기 위해 경기에서도 최대한 밀어주겠다고 공언한다. 감독도 최대한 배려하겠으니 선수 스스로도 열심히 해서 개인과 팀의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발 더 뛰어 팀에 공헌하기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정정당당이라는 스포츠정신을 반영한 아름다운 ‘밀어주기’라 할 만하다.

● 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소속 선수의 개인상을 지켜주려던 감독이 했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옳지 않은 방법으로 개인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선수들은 기자들에 의해 선정되는 시즌 최우수선수(MVP)나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철저히 외면 받았다. 그 대신 정정당당하게 시즌을 마친 선수들이 가장 큰 영예를 안았다. 우승을 위해 져주기 게임을 했던 팀도 우승은커녕 한국시리즈에서의 쓰라린 패배에 더해 여론의 질타까지 들어야만 했다.

또 인터넷을 검색해보자. 어느 해 시즌 타격왕, 도루왕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료보다 개인상 밀어주기가 훨씬 더 많이 검색된다. 기록은 순간적이고, 비난은 영원한 것이다. 선(善)한 목적에는 반드시 정당한 수단이 동원돼야 한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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