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정받아야 사는 세상, 드러내지 않고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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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피에르 자위 지음·이세진 옮김/180쪽·1만2000원·위고

지난해 가을에 소개한 책 중 일본인 사회학자의 저서가 있었다. 띠지에 적힌 문장에 공감이 가 여태 사무실 노트북 옆에 놓아뒀다.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들여다본들 대단한 것은 없다. 살아오며 긁어모은 단편적 허드레가 연관성도 필연성도 의미도 없이 굴러다닐 뿐이다.”

49세의 프랑스 파리7대학 철학 전공 교수가 쓴 이 책을 훑어 넘긴 뒤 그 띠지를 잠깐 다시 읽었다. 표제의 ‘드러내지 않기’에 대해 저자는 “‘세상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환상을 잠시 내려놓는 경험이며, 허영과 자기중심주의의 독을 해소하는 약”이라고 썼다.

일본인 사회학자와 프랑스 철학자가 자아에 대한 지나친 집중을 경계한 까닭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욕구는 물론이고 타인의 욕구에도 쉼 없이 밀착해 살아가야 하는,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끊임없이 예측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로 인해 결국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현대인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각각 이끌어낸 자각이다.

“이 시대의 현대성은 자신을 드러내며 인정받고자 하는 광적인 투쟁뿐 아니라 익명 속에 숨으려 하는 은밀한 투쟁으로도 특정지어진다”고 쓴 지은이는 ‘드러내지 않기’가 극단적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제안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비겁한 도피자의 함정을 피할 방법으로 겉모습의 유희에서 빠져나오되 그 유희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감시당하지 않는 시공이 이미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초탈의 행복이 순간임을 인정하고 그 순간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얽매여 있는 상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선언적 타협이지만 우울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 데서 은근한 위로도 안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드러내지 않기#피에르 자위#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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