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조현일]제주의 봄은 사람에게서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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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봄을 알리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물 수확이 끝난 밭과 도로 옆 길가, 돌담 옆 사이사이 조그마한 자투리땅에 피어난 노란 색깔의 유채꽃이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밭에 피어 있는 유채꽃은 파란 바다색과 어울려 더 노란 빛을 띤다.

둘째는 이른 아침 밭으로 향하는 동네 삼촌들의 발걸음이다. 제주도에선 나이 드신 어른을 삼촌이라 부른다. 동네 삼촌들은 겨울농사를 끝내고 다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제주도는 겨울에도 콜라비, 양배추, 쪽파 등을 경작하느라 바빴지만 봄을 맞는 농부 삼촌의 발걸음은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첫걸음이기에 더욱 부푼 꿈을 안고 있다.

세 번째는 소나무 재선충 방제작업을 하느라 아침부터 들려오는 나무 베는 엔진 톱 소리다. 봄을 맞아 이뤄지는 재선충 방제작업은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파쇄된다. 수십, 수백 년을 살았을 소나무가 허무하게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내년 봄에는 이 엔진 톱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요즘 제주에 여행 오는 사람들은 화창한 제주 봄날을 맞이하기도 하고 쌀쌀한 늦겨울을 경험하기도 한다. 문제는 바람이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반팔 차림도 거뜬하지만, 억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다. 4월이 되기 전까지 제주를 여행할 때는 비 예보뿐만 아니라 바람의 세기를 고려해야 한다.

1년 넘도록 손수 짓고 있는 집에도 봄이 왔다. 1년째 동생 집을 같이 지어주는 고마운 형님의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짓는 현장에 들러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커피 한잔 타 주는 형님들의 손에, 마당에 심으라며 귀한 나무를 거저 주는 형님의 멋쩍은 웃음에, 장비 값만 받고 커다란 동백나무를 심어 주는 선생님의 오래되고 낡은 챙모자에도, 우리 집 진돗개(똘똘이) 새끼들을 분양해가며 그저 1000원짜리 하나를 내미는 앙증맞은 어린아이의 품 안에도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딸아이와 아내가 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얻어 심어놓은 나무에 물을 주고, 예쁘게 자라라고 주문을 걸어주는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뒤따라오는 강아지에 놀라 달아나는 아이의 발걸음도, 그 아이를 따라가는 강아지의 엉성한 뜀박질도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제주에서 배운 미싱, 매듭법, 캘리그래피로 공방을 하겠다는 아내를 위해 집 옆에 공방을 만들기로 하고 그 기초를 얹었다. 이 공방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제주의 이웃들이나 길을 걷던 올레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의 봄. 우리가 원하는 봄은 노란 유채꽃, 하얀 매화, 따사한 햇빛보다 먼저 사람에게서 온다.

― 조현일
 
※필자(42)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2년 전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주 봄#제주 여행#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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