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의 공정한 이미지] 朴 前대통령, 집안 들어서며 눈물? 언제 울었다는 건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1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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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귀가 모습을 지켜보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는 심경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다. 사진기자 생활을 20년 조금 넘게 했고 그 중 국회 출입기자 2년 여 후에 2015년 6월부터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정권 초기에 출입하면 더 좋다고 얘기하는 선후배들이 많지만 그건 부서 상황에 따라 복불복이다. 하지만 아무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 본다는 것, 뉴스의 핵심인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피사체에 대해 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여론 평균을 선(善)으로 본다면 아마 한 쪽으로 치우쳤다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헌재의 파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법을 저지른 것은 맞고 헌법의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대포폰’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탄핵 정국이 된 후 취재를 거부하고 성명서를 발표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다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시점에서 출입기자들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했다. 일반인이 모르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있겠지만, 실기했으니 그냥 역사의 기록자로 담담하게 기록하자고 했다. 별 일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교체되었어야 맞다. 부서 상황 상 출입 기자 교체를 검토하던 와중에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아직 교체를 못하고 있다. 지금 넘겨줄 수도 없다. 조기대선이 끝나 새 정부가 출범해야 청와대사진기자 출입증을 후배나 선배에게 넘겨줄 수 있다. 아마 앞으로 2달 안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청와대사진기자라는 이름을 더 이상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결국 나는 박근혜 순장조가 되어 버렸고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아연실색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순실과 그의 남자친구들 그리고 조카 등을 제외한 공직자와 교수 등 요즘 뉴스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검찰과 특검 그리고 실패한 대통령의 귀가 길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내 일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귀가.’

헌재 결정이후 그것은 시점만이 남은 취재거리였다. 그리고 그 현장에 꼭 내가 갈 필요는 없었다. 굳이 자원해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 일이란 게 꼭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날 오후 새벽부터 현장을 지키고 있는 후배들에게 밥이나 챙겨주고 주변 환경이나 체크하고 오라는 데스크의 지시로 잠시 올라갔다가 상황이 변하면서 밤 10시 반까지 오도 가도 못하고 사저 근처 빌딩 옥상에 있었다. 금방 내려올 생각으로 올라가느라 노트북도 챙겨가지 않아 사진 전송에도 애를 먹었다. 흥분한 지지자들 때문에 건물 아래로 내려가면 못 올라 갈 것 같았다.

건물 옥상은 6층 높이이다. 아래에 도열한 지지자들은 취재진을 향해 ‘사생활 보호하라’며 내려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상황을 예상하고 문을 이미 잠근 상태라 물리력을 행사하시지는 못했다.

회사가 미리 확보한 건물 옥상은 사저 내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사실 청와대 경호팀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어야 할 빌딩이었다. 하지만 헌재에서 파면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청와대 입장에선 삼성동 사저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사에서는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고 건물 옥상을 확보했다.

12일 오후 이삿짐을 실은 차량과 가전제품을 배달하는 차량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경찰 쪽 정보로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로 온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4시 전후에는 언론사 취재기자들이 속보로 기정사실화했다. 헬기가 뜨고 드론이 날아다녔다. 사저 뒤쪽의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피해가 적게 가려면 일요일인 이날 상황이 일단락되길 바랐다. 월요일 일과 시간에 헬기가 뜨고 취재차량들이 운동장에 서 있다면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 7시 40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삼성동 골목으로 들어왔다. 4대의 차량 중 3번째 차량에 대통령이 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외 순방을 갈 때 근접 경호를 담담하는 경호관들이 차 주변을 에워싼 채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 전용기인 1호기와 행사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직업 특성상 경호관들과는 몸싸움도 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기자들과 경호원은 같은 나라 사람이 된다. 외국 경호원들이 우리 측 기자들을 험하게 다루려고 하면 우리 측 경호관들이 보호해주기도 한다.

어두운 골목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사저를 지키는 모습에서 착참함을 느꼈다. 직업상 불가피하지만 그들 역시 여론의 추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낮에 사저를 점검하면서 취재진을 피해 모자를 눌러쓰고 돌아녔고 밤에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찾아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대통령은 4년 전 이곳을 떠날 때의 태극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600 여명의 지지자들의 연호만 받았다. 권력의 무상함을 느꼈다. 권력이 있는 동안 박 대통령 옆에 서서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하던 수많은 정치인 중 극소수 측근들만 남았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웃는 모습이 그런 상황에 대한 허망함의 표출처럼 느껴졌다.

카메라에 기록된 마지막 장면은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는 뒷 모습이었다. 거실에는 분홍색 실내화가 놓여 있었다. 실내화 위쪽에는 꽃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거실에 들어간 후에는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분홍색 실내화가 한참 현관문 쪽을 향해 있었다. 밖에 있는 경호관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지자들이 도열한 서울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는 박 전 대통령 차량
지지자들이 도열한 서울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는 박 전 대통령 차량


친박 아니 진박이라고 할 만한 의원들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사저 안에 들어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일까? 최소한 기자가 지켜본 모습으로는 사실로 믿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서 웃던 그 모습 그대로 집 안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담담하게 서서 밖의 경호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행보가 분열과 갈등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본인의 불분명한 입장과 이를 필요에 따라 해석해서 밖으로 전달하는 참모들에 의해 확대되는 것은 아닐까?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무능하면 무능한 데로, 얼굴에 주름이 있으면 주름이 있는 데로 보여주는 것이 아직도 불가능한가 묻고 싶다.

일생에 한 번 찾아오는 청와대출입기자라는 시간. 멋진 대통령을 기록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다지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그냥 꿈이었다.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와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담하게 담았다. 그게 내 운명이었다. 피하고 싶었던 현장.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불명예 귀가를 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출입기자인 결국 내가 기록하게 되었다. 13일자 동아일보 1면에 웃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실렸다. “끝내…. ‘승복’의 말은 없었다”는 제목으로.

월요일 출근해 문득 내 책상 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화분의 꽃이 시들어 있었다. 뒤늦은 반성이 찾아왔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주고 왔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상이었구나.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권력’은 역시 ‘허망’한 것이었다.

변영욱 기자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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