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마주한 순간 우리의 삶은… 새롭게 해석한 ‘심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리뷰 / 연극 ‘심청’

제물로 팔려온 간난(가운데)이 바다에 빠져 죽기싫다며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주(오른쪽)와 셋째 아들.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제물로 팔려온 간난(가운데)이 바다에 빠져 죽기싫다며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주(오른쪽)와 셋째 아들. 극단 떼아뜨르 봄날 제공
깊고 그윽한 수묵화 같다. 효(孝)가 아닌 죽음의 관점에서 심청을 새롭게 해석한 연극 ‘심청’이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심청’은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더라도, 죽음을 관념이 아니라 실재적으로 고민한 노작가의 연륜이 담긴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강백 극작가(70)는 삶과 죽음을 마디마디 곱씹은 후 이를 묵직하게 투영했다.

맹수 같은 파도를 달래기 위해 출항할 때마다 처녀들을 제물로 바쳐온 선주(송흥진)는 겉보리 스무 가마에 팔려온 간난(정새별)을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만, 간난은 왜 죽어야 하느냐며 제물 되기를 거부한다. 깊은 병이 들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선주는 온 힘을 다해 죽음을 거부하는 간난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간난이 자기 이름 석 자를 배워 써보고 기뻐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환희로 채워가는 동안 선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린다.

“내가 내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선주의 대사는 죽음의 핵심을 꿰뚫는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선주 등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스스로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죽음이기에.

극은 우울하지 않다. 당돌하고 솔직한 간난과 선주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간난을 설득할 묘안을 짜내는 세 아들(이길, 신안진, 윤대홍)은 웃음을 자아낸다. 죽음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살아 있는 이들은 또 이렇게 산다. 이수인 연출가는 여백을 둔 공간 구성과 서정적인 연주, 마임(이두성)의 정갈한 동작으로 메시지를 단아하게 증폭시킨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 목록에 넣고 싶은 작품이다. ★★★★(★5개 만점). 19일까지, 3만 원. 02-742-756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연극 심청#이강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