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과 전투벌인 ‘수성군’ 실체 첫 확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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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대 사학과 홍영기 교수 연구팀… 102명 이름 적힌 수성군 명단 발굴

동학농민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동학 수성군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순천대 사학과 홍영기 교수 연구팀은 1894년 11, 12월 전남 고흥에서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벌인 수성군 102명의 이름이 적힌 흥양현 동면 명단을 발굴했다고 16일 밝혔다. 흥양현 동면은 고흥군 동강·과역·대서면의 옛 명칭이다.

홍 교수는 동학농민군이 충남 우금치전투(1894년 12월)에 패배한 뒤 호남 각 지역으로 후퇴해 거점을 마련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동학농민군은 고흥읍을 점령하려 했고 이에 일부 주민은 수성군을 결성해 전투를 벌였다. 동학농민군은 전투에 패해 뿔뿔이 흩어졌고 수성군은 이후 흥양현 동면 명단을 작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홍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동안 고흥군이 의뢰한 항일구국운동 연구용역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강면의 한 계모임 서류뭉치에 보관돼 있던 120여 년 전 흥양현 동면 수성군 명단을 발견했다. 수성군 102명 가운데 97명은 동면 주민들이었고 5명은 고흥읍에 살던 향리 등이었다.

홍 교수는 “한 지역 수성군 전체 명단이 발견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성군은 향리와 그의 땅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미등록된 고흥지역 동학농민군 29명의 명단도 발굴했다. 이 명단은 1917년 천도교에서 작성한 고흥군 교구역사라는 책에 들어있었다. 동학농민군은 전투 패배 후 숨어들어 천도교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군과 수성군의 비극적 전투는 1894년 고흥뿐만 아니라 전남 나주, 장흥, 순천과 전북 남원 등 호남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수성군은 관군이 아닌 향리 등이 중심이 돼 결성된 민간 군대였다. 수성군 일부는 왕에 대한 충성을, 일부는 자신의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또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고흥지역 서훈자 22명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하고 미서훈자 16명도 추가 발굴했다. 특히 고흥지역 대표 의병인 백남 이병채 선생이 쓴 북래산록을 수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고흥군은 근현대역사 재정립을 통한 체계적 관리와 보전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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