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꺼림칙하다고? 편견을 넘어서야 할 미래 식량 ‘곤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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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빠삐용의 키친’에서 내놓는 곤충 요리는 곤충 요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밀웜, 귀뚜라미, 메뚜기를 비롯해 7가지 식용곤충을 사용하는데 세척, 멸균, 건조시킨 뒤파우더, 오일 형태로 요리에 활용한다. 바앤다이닝 제공
‘빠삐용의 키친’에서 내놓는 곤충 요리는 곤충 요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밀웜, 귀뚜라미, 메뚜기를 비롯해 7가지 식용곤충을 사용하는데 세척, 멸균, 건조시킨 뒤
파우더, 오일 형태로 요리에 활용한다. 바앤다이닝 제공


2010년 덴마크 코펜하겐. 부둣가 창고를 개조한 레스토랑이 오픈했다. 레스토랑의 간판명은 ‘노마(NOMA)’. 7년 후 셰프와 음식평론가가 뽑은 전 세계 최고의 식당이자 한 해 100만 명이 예약을 하게 되는 전설의 레스토랑이다. 주방 안에서는 르네 레드제피 셰프가 손님에게 낼 요리를 열심히 접시에 담고 있다. 바로 개미로 만든 ‘개미 타르타르’다.

“북유럽에는 레몬이 안 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레몬 맛이 나는 개미를 써요.” 단순하지만 명확한 답변이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인구는 약 73억 명, 2050년엔 약 96억 명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96억 명이 먹고살기 위해선 식량 생산량을 지금의 두 배 이상 늘려야 하지만 대안은 만만치 않다.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곤충’이라는 미래식량을 마주하고 있다. 7년 전 레드제피 셰프는 이러한 미래를 그의 ‘혀’로 정확히 예감한 것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는 일상적으로 곤충을 먹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곤충을 혐오스럽게 느끼는 대중의 인식이다. 영국 런던의 저널리스트 에마 브라이스에 따르면 인류에게는 오래전부터 식충성(곤충을 먹는 성향)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다만 농경과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곤충이 농작물을 망치는 해충으로, 또 더러운 장소에 꼬이는 혐오 생물로 인식이 변화하면서 식충 문화는 점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최근 사라진 인류의 식충성에 다시 호소하며 쇠고기를 대체할 미래식량으로 곤충의 존재감이 폭넓게 부각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곤충은 곧 닥칠 인구 증가 문제로 인한 식량난의 해결책이다. 쇠고기 등 육류를 대신할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쇠고기 생산에 비해 12∼13배 적은 물과 사료가 사용돼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이다.

해외에는 이미 귀뚜라미로 만든 단백질 바를 생산하는 스타트업 기업과 식용곤충을 전문적으로 사육 생산하는 농장 엔토모팜(ENTOMO FARM)이 등장했다. 집에서 식용곤충을 사육할 수 있는 각종 케이지가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레스토랑 셰프들은 식용곤충을 활용한 요리를 테이블에 올리며 이색적인 실험을 이어나갔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도쿄 곤충 페스티벌이 벌써 7회째 개최됐으며 곤충을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간장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식용곤충 시장에 대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2014년에는 갈색거저리유충(밀웜·MEALWORM)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식품 원료로 인정받았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후 메뚜기, 귀뚜라미, 흰점박이꽃무지유충, 누에번데기, 백강잠, 장수풍뎅이유충을 식품 원료로 인정했고, 2018년까지는 10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식용곤충 요리가 전무했던 국내 외식업계에도 식용곤충을 테이블에 올리는 레스토랑과 셰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식용곤충 요리를 전문으로 내건 레스토랑 겸 카페 ‘빠삐용의 키친’이 대표적인 선두주자다. 밀웜, 귀뚜라미, 메뚜기를 비롯해 7가지 식용곤충을 사용하는데 세척, 멸균, 건조시킨 뒤 파우더나 오일 형태로 요리에 활용한다.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개발한 메뉴 ‘식용벌레’는 고소애(갈색거저리유충)와 고소애의 번데기로 만든 칩, 그리고 이화주와 함께 으깬 감자를 넣은 요리로 한국술과 매칭해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백승욱 셰프가 선보인 ‘겨울 가든’에는 누에번데기 한 마리가 숨어 있다. 바앤다이닝 제공
백승욱 셰프가 선보인 ‘겨울 가든’에는 누에번데기 한 마리가 숨어 있다. 바앤다이닝 제공


백승욱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돌아온 아키라 백 셰프의 레스토랑 ‘도사 바이 백승욱’에서도 누에번데기가 마치 미술작품처럼 아름답게 차려진 요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겨울 가든’이다. 겨울에만 판매하는 이 메뉴는 아몬드, 깨, 흑미, 체스트넛, 파인넛, 마늘 등을 간장에 졸이고 말리고 갈아서 마치 흙처럼 바닥에 깐 후 타피오카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파우더를 뿌려 하얀 눈이 내려앉은 정원을 형상화했다. 그리고 바로 이 흙속에 누에번데기 한 마리가 다소곳이 숨어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누에 요리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시도한 이유는 무얼까? 긴장을 완화시키고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영양학적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셰프의 어릴 적 추억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백승욱 셰프가 운동선수였을 때 경기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가 미숫가루에 누에가루를 섞은 음료를 해주셨는데 그때 음료를 마시면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났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곤충요리를 위한 실용적이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2016)에서는 야외에서도 식용곤충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2020년형 식용곤충용 커트러리 키트 ‘버그버그 키트’가 화제를 모았다. 홈이 좁은 포크 스푼과 작은 핀을 박은 젓가락, 손으로 곤충을 집을 수 있도록 고안한 부리형 집게 등 식용곤충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실용적 도구들이 모여 있다.

일본에서 등장한 메뚜기 간장. 바앤다이닝 제공
일본에서 등장한 메뚜기 간장. 바앤다이닝 제공


일본에서는 간장의 최초 발상지인 와카야마 현 기노카와 지역의 어느 비영리단체가 밀을 사용하지 않고 메뚜기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발효시킨 ‘메뚜기 간장’을 정식으로 내놨다. 쌀누룩, 물, 소금, 메뚜기 추출물만으로 만든 메뚜기 간장은 불쾌한 맛과 향 없이 부드럽고 깔끔해 가다랑어포 육수나 버섯육수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미국의 단백질 바 ‘엑소’에는 한 개에 메뚜기 40여 마리가 들어간다. 바앤다이닝 제공
미국의 단백질 바 ‘엑소’에는 한 개에 메뚜기 40여 마리가 들어간다. 바앤다이닝 제공


휴대하면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에너지 바에도 식용곤충이 들어간다. 식용곤충 식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 이더블버그에서 출시한 ‘달콤상콤 오트밀 바’는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을 비롯해 다양한 비타민 군이 함유된 메뚜기를 분말 형태로 넣고 만든 에너지 바다. 메뚜기 분말의 함량은 각각 10% 정도다. 미국에서는 ‘엑소(EXO)’라는 단백질 바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메뚜기 가루를 사용한 것으로 에너지 바 한 개에만 메뚜기 40여 마리가 들어갈 만큼 고단백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귀뚜라미를 파우더 형태로 사용한 제품을 선보였는데 바나나, 블루베리, 사과 등을 함께 넣는 등 다양한 맛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이더블버그’에서 내놓은 ‘달콤상콤 오트밀 바’. 메뚜기를 분말 형태로 넣었다. 바앤다이닝 제공
국내 기업 ‘이더블버그’에서 내놓은 ‘달콤상콤 오트밀 바’. 메뚜기를 분말 형태로 넣었다. 바앤다이닝 제공


곤충의 먼 친척뻘인 로브스터는 200년 전에는 노예가 먹는 저급한 식재료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고급 식재료로 탈바꿈했다. 혐오 식품이던 곤충 요리가 앞으로 식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날도 머지않았다.

박홍인 바앤다이닝편집장
#곤충#요리#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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