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판 ‘反이민 행정명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마크리대통령, 이민법 개정안 서명… 범죄연루 이민자들 신속추방 가능
과거 트럼프와 사업거래 등 친분
일부정치인 “국경장벽도 세워야”… 볼리비아-페루 등 주변국들 반발

 중남미 강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연상케 하는 이민법 강화 조치에 나섰다. 인근 국가들로 이민자 막기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 놓은 ‘트럼프 표 이민자 억제 정책’이 세계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사진)이 지난달 30일 서명한 이민법 개정안은 △마약 △무기 밀매 △돈세탁 같은 범죄에 연루된 이민자들을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후속 조치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에서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며 현재의 국가 체계를 갖춘 ‘이민 국가’다. 현재도 전체 국민(약 4400만 명)의 4.5% 정도가 이민자 출신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아르헨티나 국민 사이에선 이민자들이 교육과 복지 혜택을 무임승차로 누리면서 각종 범죄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연방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범죄자의 약 22%가 외국인이다. 아르헨티나 우파 정치인들 중 일부는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으려는 것처럼 아르헨티나도 볼리비아와의 국경 지역에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크리 대통령도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며, ‘3D’(Dirty Difficult Dangerous·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란 의미) 분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웃의 가난한 중남미 국가 인력을 적극 받아 온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이민법 강화 조치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자국민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많이 간 볼리비아, 페루, 파라과이 같은 주변국들은 이번 조치에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나의 형제 중남미 대통령들은 북쪽(미국)에서 시작된 이민 정책을 따라 하면 안 된다”라고 호소했다.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거래를 했고, 개인적 친분도 있는 마크리 대통령이 정치 혹은 사업 측면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트럼프 지원하기’에 나선 것 아니는 의혹도 제기된다.

 아르헨티나의 반이민 정책이 브라질, 칠레, 베네수엘라 같은 이웃 국가의 이민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베네수엘라는 경기 침체가 악화됐던 2015년 콜롬비아 이민자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 조치에 나선 경험이 있다. 칠레 역시 아이티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아르헨#반이민#마크리대통령#중남미#아르헨티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