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극복할 희망의 메시지 던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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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 독일 시인 횔덜린 전집 최초 번역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가 31일 경기 화성시 석우동 연구실에서 자신의 50년 가까운 횔덜린 시 독해를 결산해 번역하고 발간한 ‘횔덜린 시 전집’과 함께 했다. 이 책은 횔덜린이 남긴 시의 초안, 스케치, 단편까지 망라했다.
화성=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가 31일 경기 화성시 석우동 연구실에서 자신의 50년 가까운 횔덜린 시 독해를 결산해 번역하고 발간한 ‘횔덜린 시 전집’과 함께 했다. 이 책은 횔덜린이 남긴 시의 초안, 스케치, 단편까지 망라했다. 화성=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독일에서는 1770년을 ‘위대한 탄생의 해’라고 부른다. 베토벤과 헤겔, 그리고 프리드리히 횔덜린(∼1843)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횔덜린은 독일 현대시를 열어젖혔고, 유럽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난해함 탓에 대중적이진 않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7년 낸 비평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의 제목을 횔덜린의 시구에서 따왔고 김지하 시인이 ‘횔덜린을 읽으며/운다’고 노래한 것을 비롯해 우리 현대시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줬다.

 “밤은 깜깜하지요. 그러나 다음 날이 새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밤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혼란도 미래를 예비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마라’ ‘고통은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가져라’. 횔덜린의 시는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국내 횔덜린 연구의 선구자인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73·전 총장)가 그의 시 300여 편을 처음으로 모두 번역해 ‘횔덜린 시 전집 1·2’(책세상)를 냈다. 장 교수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횔덜린의 시는 구절구절 번득이며 우리를 깨치게 만든다”고 했다.

 독일 남부 라우펜의 수도원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횔덜린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와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공화주의자였다. 당대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20세기 들어 주목받았다. “횔덜린은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집단이건 개인이건 간에 지배가 없는 세상을 바란 것 같아요. 알프스 산맥이나 라인 강처럼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에 매이지 말라는 것, 역사조차도 자연에 의존해 진전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 교수는 “최근에도 ‘위대한 시인은 수원(水源) 같은 이로, 역사가 바뀌고 요동치는 국면을 대변하고, 이름 짓는 사람’이라며 호머, 보들레르와 함께 횔덜린을 꼽는 한 시인의 글을 읽었다”고 말했다.

 시 번역은 언어의 운율이 희생되는 탓에 ‘불가능한 작업’이라고들 한다. 장 교수는 ‘의역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고 원어에 순응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의 맛은 더욱 살아났다. 가령 ‘파트모스―홈부르크의 방백에게 바침’의 첫 구절은 ‘신은, 가까이 있지만 붙잡기 어렵다’라고 풀어쓰지 않고 원어의 순서를 살려 ‘가까이 있으면서/붙들기 어려워라, 신은.’이라고 옮겼다. 판독상의 학술적 논란을 정리한 ‘도이처 클라시커’사의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고, 보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과 해설을 담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은 한때 ‘말하려는 것이 있어도 못 하는 이들을 대신해’ 썼지만 시를 선동의 도구로 삼은 것은 아니다”라며 “고대 그리스처럼 독일의 문화가 꽃피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횔덜린은 사랑하던 이가 갑자기 죽은 뒤 32세 때부터 정신착란 증세로 평생 고통받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 최후의 시들은 수묵화처럼 담백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시구요? 너무 많은데…. ‘순수한 원천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노래 역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다. 왜냐하면/…’(‘라인강―이작 폰 징클레어에게 바침’에서) 어때요? 원천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시도 마찬가지죠. 인간이 뭐든 다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장영태#독일 시인 횔덜린#횔덜린 시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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