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8세기에 망원경 들여왔는데… 왜 조선판 관측기는 없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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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강명관 지음/347쪽·1만8000원/휴머니스트

최근 증도가자(證道歌字) 진위 논란이 떠들썩할 때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최고(最古) 활자가 바뀌더라도 구텐베르크 활자 혁명의 역사적 중요성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한국인은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구텐베르크의 발명은 유럽의 종교혁명을 태동시키며 거대한 사회 변화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설사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드러나 금속활자 출현시기가 138년 이상 앞당겨져도 구텐베르크가 당대 사회에 끼친 영향을 넘어선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책은 조선사회가 18∼19세기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 문물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안경과 자명종, 유리거울, 망원경의 입수 경로를 일일이 추적해 당시 조선사회의 지적 흐름을 들여다보는 미시사적 접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세도정치와 성리학에 갇힌 당시 조선사회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을 뿐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특히 기기의 이면에 놓인 작동 원리에 철저히 무관심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조선시대가 끝날 때까지 유리나 망원경 제작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 서양에서 망원경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낳거나, 시계가 노동 시간의 상품화로 이어진 현상들이 조선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이것이 커다란 사회 변동을 가져오지 못한 사실과 겹쳐진다.

저자는 문물이 사회, 제도, 사상의 맥락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18∼19세기 조선에서 자명종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은 1년 단위의 노동 사이클을 갖는 농경사회에서 시, 분 단위로 노동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극소수의 경화세족에만 권력이 집중된 조선후기 사회구조다. 폐쇄적인 당시 사회체제에서 지식인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도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연과학과 기술을 천시한 성리학 중심의 학문적 위계질서도 영향을 끼쳤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증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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