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경제 발전이 불평등 낳아… 주류 경제학을 견제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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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질베르 리스트 지음·최세진 옮김/296쪽·1만5000원·봄날의책

‘총수요(AD) 곡선과 총공급(AS) 곡선 사이에서 거시경제 균형이 달성된다.’

마치 물리학에서 ‘E=mc²’ 공식처럼 반복적으로 암기한 효과였을까. 20년 전 대학 거시경제학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 중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문구다. 교수는 불황을 극복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총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른바 ‘AD-AS 곡선’을 칠판에 그려가며 수식까지 곁들인 설명에 이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철칙이었다.

하지만 수요를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는 게 진정한 대안이 될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수요 진작은 주류 경제학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많이 자연이 파괴되고, 결국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는 논리다. 더구나 ‘21세기 자본론’에서 토마 피케티가 갈파했듯 경제가 발전할수록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아 ‘돈이 돈을 낳는’ 식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주장이다. 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류 경제학이 과학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세상을 망치는 주범이라고까지 몰아붙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저자는 경제학자가 아닌 인류학자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경제학을 비판하는 데 대한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걸까. 저자는 서문에서 “진짜 경제학자는 자기 학문의 공리에 대해 논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썼다.

이 책은 “상품화로 대표되는 시장적 사고방식이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파괴할 것”이라고 예언한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개인의 이기주의가 사회적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가설은 비현실적이고 반(反)생태적인 오류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경제학은 과학성을 획득하기 위해 역사와 자연, 사회적 관습과 관계, 감정을 배제해야만 했는데 이것은 삶 그 자체를 배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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