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생명은 꽃핀다, 또 다른 생명의 빛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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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서 생명으로/베른트 하인리히 지음/김명남 옮김/304쪽·1만8000원·궁리

몽골에서는 한때 풍장(風葬)을 했고, 티베트에서는 지금도 조장(鳥葬)을 한다. 우연히 여행자가 찍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조장의 모습은 솔직히 태연히 바라보기 어려웠다.

저자는 야생동물이나 곤충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생물학자다. 미국 메인 주의 통나무집에서 살며 책을 쓰는 그에게 중병에 걸린 친구 빌이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이 죽으면 주검을 저자가 소유한 숲 속의 공터에 방치해 큰 까마귀들에게 내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 저자는 이 편지를 계기로 오래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 ‘생명의 존재와 순환’에 대해 더욱 파고든다.

책의 시작은 송장벌레다. 이 벌레는 그리스어로 ‘죽음’을 뜻하는 ‘네크로스’와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에서 비롯된 학명 ‘니크로포루스’를 갖고 있다. 송장벌레는 생쥐 같은 동물의 시체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유충에게 먹인다.

각종 사체를 처리하는 청소동물을 지켜보는 저자의 시선은 집요하다. 고래의 사체를 통해 심해 생물들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에서 오고, 다른 생명을 섭취하면서 유지된다. 생명 활동이 멈춘 사체가 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데 쓰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자연 분해가 쉬운 재료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묘목을 결합시킨, 변형된 수목장의 디자인을 최근 봤다. 이 방식은 화장을 하지 않아 연료가 들지 않고, 이산화탄소도 나오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이 계절의 제주 감귤 같은 것. 손자에게 줄 감귤이 자랄 나무 아래에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생명에서 생명으로#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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